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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8 10:39
[음식및기타]
(영화 줄거리나 여러 평들이 이미 많이 나와 있으므로 새삼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니 그냥 개인적인 소감만 쓰련다.)
혼자 걷는 밤길의 무서움. 낯선 이를 맞닥뜨렸을 때의 순간적인 공포감. 나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초조함. 그리고, 결국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안도감과 씁쓸함. 왜 이래야 하나 싶은 생각에 밀려드는 불쾌함. 대낮이나 초저녁에 귀가하지 않는 이상 아마 앞으로 영영 벗어나지 못할, 뒤엉킨 감정들.
세상이 워낙 흉흉한 탓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너무나 쉽게 생각해서 일어나는 범죄들 탓에, 끝이 보이지 않는 이런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리라. 그 덕분에 각종 보안 관련 서비스들은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하다못해 나부터도 휴대전화 안심 서비스 같은 걸 이용하고 있기도 하고.
영화 ‘추격자’를 봤다. 개봉하기 전부터, 그리고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에 나설 때에도 보아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영화. 워낙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인간의 일그러진 내면이 적나라하게 부딪혀오는 영화는 젬병이라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실제로 ‘사생결단’을 보고 나서도 한동안 맛이 가 있었다는.) 과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앓을까 하는 게 걱정이 되었달까. 그러니까 애초부터 나는 이 영화의 ‘재미있고 없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결국 봐버렸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은 포스터.
솔직하게 말해보자. 이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었는가? 재미있었다면, 어떤 점이 그러했는가? 뭔가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쳐서? 아니면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서? 아니면 여러 다른 이유들로?
나는 아직도 이 영화의 재미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판단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무서웠으니까. 무섭고 너무 화가 나서 울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굳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마주하고 있노라니, 마치 스너프 무비를 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몰래카메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보자면 ‘추격자’는 잘 만든 영화이지 싶다. 영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거의 없는 내 막눈에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그저 영화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나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그런 남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보고 나서 ‘아, 재미있었어.’하며 잊어버릴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름의 ‘역린’이 있다. 그리고, 크든 작든 음험한 내면의 무언가를 갖고 있다. 다만 이를 얼마나 조절하고 타협하고, 다스리는가(혹은 감추는가)의 문제다. 물론 모두가 능숙하게 해내는 건 아니다. 가끔 나도 모르게 드러낼 때도 있고, 제어가 안 되는 그런 때도 종종 있지만 어차피 대부분이 그러하니, 서로 감안해주고 그럭저럭 부대끼며 살아간다. ‘추격자’는 이 작업에 실패한 어느 한 인간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통제 불가능한 일그러진 내면, 여기에 말려 들어가 희생된 다른 사람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그리 쉽게 들여다볼 수 없다. 이 영화가 무서웠던 또 하나의 이유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라고, 저건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