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이고 단선적인 의미에서 세계는 하나다. 지금은 서기 2008년이고, 발칸 반도는 코소보 독립 선언으로 풍전등화 상태에 놓여 있고, 대한민국은 새 정권 출범부터 들썩인다. 자본가 계급도 노동자 계급도 아닌 범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서 고통 받고 있고, 누구는 2억짜리 골프 회원권이 싸구려라 하는 그런 현재. 각각의 일들은 독립된 변수인 듯 하면서도 결국 2008년의 지구, 를 시공간적 무대로 삼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동일한 삶의 전제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동일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다.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 직업, 다양한 기호, 가치관과 같은 요소를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수십 억의 인구만큼 동일한 숫자의 세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한 탓에 혹자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의 정체성일 거다. 다만 양자의 관계는 유동적이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따라 세계를 구축하기도 하고, 혹은 속해 있는 세계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세계’와 ‘정체성’은 A라는 한 사람이 지금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선언과 같다. 나는, 나의 정체성과 나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소설 ‘모방범’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마츠모토 세이쵸의 뒤를 이어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로 자리잡고 있는 소설가다. 현대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추리 소설 기법을 풀어내어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선동가이기도 하고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면모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팬이기도 하며, ‘모방범’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도 내가 감히 최고라 이야기하고픈 작품이다.
고등학생 소년인 츠카다 신이치는 1년 전 불의의 사고로 양친과 여동생을 잃었다. 자신을 제외한 일가족이 집에서 무참히 살해당했으며, 그 현장의 최초 목격자가 바로 신이치였다. 범인들은 바로 체포되어 재판 중에 있지만 신이치의 상처는 아물 줄 모르고, 그는 과거의 기억에서 그저 도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마다 조깅하며 들르던 공원에서 우연히 여자의 팔과 핸드백이 쓰레기통에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만든다. 석 달 전 퇴근하던 딸(후루카와 마리코)이 돌아오지 않아 노이로제 상태에 있던 후루카와 마치코는 그 팔이 자신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버지인 아리마 요시오와 함께 경찰서로 가지만 딸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리마 요시오, 즉 후루카와 마리코의 외할아버지는 어느 날 음성을 변조한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다. 손녀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겠다며 노골적으로 아리마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상대방. 한편 신이치의 앞에 한 여자아이가 불쑥 나타나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며,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고 너만 용서해 준다면 아버지는 감형될 수 있다며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그 여자아이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살인자들의 주동자의 딸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스포일링의 연속이므로 여기까지만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전체 이야기의 대략 1/15 정도에 불과하다. (새로운 그리고 중요한 등장인물들도 줄줄이 나온다.) 뒤를 예측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나의 상상을 비웃듯 비껴간다. 그러한 까닭에 처음 이 책을 보기 시작했을 때 다음날 오전 수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손에서 놓지 못해 밤을 샜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생히 살아 있다. 캐릭터 설정이 분명하고 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외면하며, 때로는 상처 받다가 서로 공감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속해 있는 환경도 다르며 가치관도 세계관도 다른 사람들이 일련의 사건에 관련되면서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다시 세우기도 하는 모습들을, 작가는 ‘희노애락애오욕’을 고스란히 담아서 그려내고 있다.
세계의 붕괴와 구축. 이 과정은 주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세계의 주체인 ‘나’의 자아와 정체성에 따라 얼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가? ‘나’는 무엇으로 그리고 무엇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라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체로서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 가능한가? 이 소설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물음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물리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과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양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기란 불가능할 거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갈무리되어 마음 속에 남는 무언가가 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좋아함을 넘어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작가다.
국내에서 총 3권으로 번역되었다. (다만, 번역본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은 2001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었고 나는 2004년에 일본어판으로 읽었기 때문에 느낌이 약간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지간해서는 책을 추천하지 않지만, 이 소설은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당신’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책을 고르는 분야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재작년 어느 날에 집에 있는 책들의 인덱스 카드도 만들 겸 해서 총 권수와 분포도를 조사해 봤더니 무려 60% 이상이 인문과학 서적이었더랬다. 그 이후 한층 더 심해졌으니 지금은 7~80%에 육박할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 사회과학 서적이 20%, 어학이 5% 정도이고 소설이 약 3% 정도? 대체로 빌려보지 않는 주의기 때문에 별도로 빌려 읽은 책들이(전문 외서 빼고) 없다고 치면 (아. 물론 만화책은 언제나 열외다. ㅋㅋ) 나는 어학 공부하는 것보다 소설을 안 읽는다. 그런데다가 서정적인 소설이나 연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설은 거들떠도 안 본다. 대체로 추리소설, 그것도 일본의 사회추리소설들만을 보는 편이다.
개략적인 줄거리를 얘기해 보자면, 주인공인 츄야(별명이다)는 사고로 잠시 기억을 잃었던 그를 돌봐준 우라도 겐지를 따라 그의 본가를 방문하게 된다(물론 츄야는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억을 되찾았다.). 겐지의 본가는 구마모토 산 속에 있는 일명 '암흑관'이라 불리는 외딴 '성'이다. 저택의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까만 색으로 꾸며져 있어서 암흑관이라 불린다. 그런데 그가 방문한 날 저녁 갑자기 이름 모를 청년이 저택의 별채(정확하게는 탑) 꼭대기에서 추락해 기억을 상실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동시에 온통 기이하거나 아니면 수상할 뿐인 암흑관의 식구들. 츄야는 겐지의 초대를 받아 우라도 집안 외부인은 절대 참석할 수 없게 되어 있는,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달리아의 날' 연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게 되고, 집에서는 연이어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는, 이야기다. 분량이 꽤 되어서(총 3권)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하고, 제3자의 뒤죽박죽인 시점과 츄야의 시점이 혼재되어 있는 탓에 중간중간 방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암흑관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을 창조해 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작가의 노력과 성실함에는 감탄이 나온다. 실제로 책을 보면 암흑관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부 설계도가 있을 정도다. 전반적인 세팅도 참 섬세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정통' 추리물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의 가장 큰 단점은 중간에 트릭이 뭔지 알아버리면 그걸로 끝이라는 거다. 바꾸어 말하면 김빠진단 이야기.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예전에 영화 '올드보이'를 봤을 때도 미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딸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난 그 영화가 참 재미없었다. 뭔가 다른 게 있을 줄 알았으니까. 이 책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순간부터 '이거 !#$ 이겠는데?'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맞아버렸다. 뭔가 반전이라던가 예상치 못한 결말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저 뻔한 흐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추리력이 뛰어나다거나 사고가 논리적이라거나 그렇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_-!
사실 이런 소설은 트릭 때문에 읽는 게 큰데, 그걸 빼고 나니 다 읽고 나서 참 허탈했다. 뭐 이런 콩가루 집안이 다 있어 하는 생각과 함께. 취향이 맞는 사람이라면 (나와는 달리) 재미있게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더군다나 암흑관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상상하는 즐거움도 주기 때문에 혹평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빌려볼 걸 하는 생각은 든다. 그냥 원래 보던 책들이나 봐야겠다.
덧) 내 방의 서가는 4면 중 2면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면은 신간 코너다. - -; 얼마 전 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오셔서는, 신간 쪽을 훑어보시더니 "어째 넌 요새 사는 책들이 전부 다 살인 뭐 이런 책들이냐?"라고 하셨다. 그러게요, 아부지. 왜 그럴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