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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구성'에 해당되는 글 1건
2008/10/05 15:30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저릿거리게 만드는 책과 만날 때가 있다. 사용된 단어의 적확함은 물론이고 문장의 충실함이나 전체적인 글의 구조가 저자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책. 대개 이런 책들은 자연스럽게 '느리게 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으니까.

일본의 재구성이라는 책이 딱 그렇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책을 읽기 전에 저널리스트 출신이라는 저자 약력을 보고는, '내 보기에 이렇더라' 식의 별 시덥잖은 책이겠거니 싶었다. 그런 책이 좀 많아야지. 우리나라에도 기자 출신의 모 여사님께서 일본은 없다라는 개그지깡깽이 같은 책을 하나 낸 적이 있는지라 나도 모르게 그 생각부터 든 거다. 세상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 자신의 무식함과 편견에 다시 한 번 반성을.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겉으로 보기에 참 독특한 나라다. 때문에 일본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수도 없이 있어 왔던 걸테다. 이의 가장 본격적인 최초의 연구 결과가 그 유명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일 것이고. 허나 이 책은 '민족성'이 분명히 존재함을 전제로 깔고 일본을 하나의 훌륭한 사례로서 재탄생시키려 한 것이므로 개인적으로는 별로 읽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단순논리의 명쾌함은 대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에 베네딕트가 만들어낸 잘못된 일본관이 아직까지도 건재하다는 점.

문제는 일본에 대해 그른 이미지를 만든 것이 베네딕트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그 이후로 더욱 적극적으로 만들어지고 유포되어 이제는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이미지인지 경계선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라이샤워와 보겔이 만든 바로 그 이미지 말이다. 저자 패트릭 스미스는 이 사태의 주범을 주저 없이 미국이라 말한다. 야만적인 전쟁을 종결시키고 민주주의를 이식하여 새로운 일본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명목 아래 미국이 자행한 일련의 행위들은 일본을 반세기 이상 혼란에 빠뜨렸고, 역사 앞에 반성하며 온전한 주체로서 바로 설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면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책은 전반부에서 위와 같은 미국의 범죄행위들을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기술한 다음, 그로 인해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어떻게 변질되었는가를 여러 분야에서 조명하고 있다. 정치, 기업문화, 예술, 차별문제 등등인데, 물론 선뜻 이해하기 힘든 구절도 좀 있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그렇게 느끼는 지점은 대체로 '정보'가 아닌 저자의 '의견'이다. 이거 세미나나 토론용으로 정말 괜찮겠다 싶었다. 헤럴드트리뷴 지의 도쿄지국장으로 10년간 근무하면서 얻은 수많은 정보와 인맥을 통해 저자가 책에 담아내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만만찮은데다 함께 생각해봄직한 거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이미지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덧붙여 좀 더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건 일본의 발전 양태를 상당 부분 닮아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도 많고 말도 많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과 꽤 겹친다는 건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구조의 왜곡은, 내부 구성원들의 사고와 가치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국가라는 게 엄연히 독립 가능한 개체라서 자기 스스로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결정지을 수 있느냐, 하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지만서도. 이런 부분에서 역사는 꼭 배워야 하는 학문인 동시에 슬픔을 가져다주는 학문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추천한다. 최근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중 가장 탁월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 가장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 속의 구절을 잠시 인용해 본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서구가 언급하기 좋아하는 일본의 두 가지 이미지에 대해 자주 불평했다. 하나는 사무라이와 선불교식 정원으로 대표되는 옛날 일본이고, 다른 하나는 첨단기술제품과 효율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일본이다. "서구인들에게 이 두 이미지의 사이는 그저 공백일 뿐인데, 사실 바로 이 공백 부분에 일본인들이 살고 있다."

비단 서구뿐이겠는가. 그저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분석하고 싶었고 안심 혹은 경계하고 싶었을 뿐인 거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일본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우리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타자를 올곧게 인식하려면, '나'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근본적 성찰부터 이루어져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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