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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1 [번역] 공문서류의 보존이란 (4)

[번역] 공문서류의 보존이란

이 글은, 요즘 구독 중인 어떤 일본 주간지의 '칼럼' 하나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요금을 따로 지불하지 않고서는 온라인에서 절대 기사를 볼 수 없게 하는 신문이라, 부득이하게 원문 없이 번역문만 올린다. (심지어, 나 같은 신문 정기구독자에게도 온라인 혜택 따위 없다-_-) 이 칼럼을 쓴 목적이 무엇이건, 소재는 일본의 고문서에 관한 것이라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싶어 일단 블로그에 저장해 두는 바임.


메이지(明治) 태정관 정부 이래, 공문서류와 내각문고 장서로 크게 나뉘는 국립공문서관의 소장 자료는 총수만 120만 책(冊)에 이른다. 그중 40% 이상이 에도(江戸) 바쿠후의 '모미지야마분코(紅葉山文庫)'에서 유래한 고전서와 문서다. 기록 및 문서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나, 내각문고의 문서류를 보면 이 문서들이 만들어진 에도 바쿠한체제 당시(17~8세기) 일본 행정의 단면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국립공문서관은 특색 있는 자료와 기록류를 엄선해 매년 봄과 가을에 특별전을 연다. 올봄의 테마는 지난해 봄의 특별전 테마를 이은 '하타모토/고케닌(旗本/御家人)2 바쿠신들의 실상'이었다. 바쿠신(幕臣)이란 바쿠한체제 하에서 행정에 종사한 이들이며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국가공무원'쯤 되겠다. 도쿠가와 쇼군의 보좌역으로 정무를 집행한 타이로/로쥬(大老/老中)를 비롯해 행정 조직의 우두머리부터 말단에 이르는 무사들이 저마다의 업무를 기록해 둔 문서가 남아 있으며, 이 문서들을 특별전에서 전시한 것이다.

이들 문서류로부터 에도 행정관의 모습을 지금 이곳으로 생생하게 불러들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에도 유명한 '하세가와 헤이조(長谷川平蔵)‘는 그저 단순한 체포의 달인이었던 것만이 아니었다. 텐메이(天明) 기근이 있은 후 격증한 노숙자/부랑자들을 이시카와지마(石川島)의 닌소쿠요세바(人足寄せ場)에 모이게 한 후 직업 교육을 실시하고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았으며 그들을 갱생시키고자 한, 뛰어난 행정 수완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시볼트 사건에 연루되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바쿠후 텐몬카타(天文方), 타카하시 카게야스(高橋景保)는 당시 쇄국 상태였던 일본에서 만주어 해독에 크고도 많은 연구 성과를 올린 일류 어학자였다. 이들 외에도 남겨진 문서를 통해 그 재능과 수완, 실적이 재조명된 하타모토/고케닌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기조차 어렵다. 이러한 재평가는 문서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들 에도 바쿠후의 행정문서 중 대부분은 막말유신기, 에도 성 타몬야구라(多門櫓)에 정리 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야구라(櫓)는 원래, 태평기에는 공개하지 않을 문서의 폐기장소로 이용되었다. 일반적인 서적류는 성내 및 모미지야마 카키모노구라(書物蔵)에 수납되었으나, 이 카키모노구라를 제대로 수복하기는커녕 누수 및 골조 변형 문제가 생겨도 임시방편 수준의 응급조치를 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일본 사회는 재정상의 이유를 들며 도서관과 문서관 등에 대한 준비를 뒷전으로 하고 있는 상황인데 에도 시대 역시 그러했다는 것은 다소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 일본은 공문서 폐기를 둘러싼 논의로 소란스럽다. 정확한 공문서 및 기록류 작성과 이관, 보존과 전승이 요구된다. 자신들이 관여한 공무에 자긍심을 가진다면 공문서는 제대로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재 공무에 대한 세간의 평가 여부에 관계 없이 후대가 그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해줄 것이다. 만약 문서 보존을 게을리 하면 일본의 역사를 잘못 쓰고 일본의 자긍심과 아이덴티티를 빼앗았다며 후대에까지 비난 받는 일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타카야마 마사야(高山正也), 국립공문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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