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9 21:54
[책과책읽기]
[추가] 2009년 7월 21일 현재, 알라딘에서는 절판되었다. -_-; 출판된 게 6월 중순인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 이름만으로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는 작가 중 한 사람. 피노체트에게 우호적이었던 (망할) 노인네긴 하지만, 분하게도, 그의 글은 달콤한 절망감을 안겨 준다. 그래. 소설이란, 상징이란, 이런 것일 테다,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보르헤스가 다른 작가들의 단편들을 묶어 펴낸 문학전집이 국내에서 출간되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는 완역되어 나온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3권이 나왔다. (잭 런던,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 레오뽈도 루고네스) 그리고 그 중 잭 런던의 ‘마이더스의 노예들'을 읽었다.
![]() |
마이더스의 노예들 - ![]() 잭 런던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훈 옮김/바벨의도서관 |
총 다섯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고, 단편집의 장점을 잘 살린 책. 약간 지루한 듯 길게 이어가다가도, 어느 순간 날카롭게 잘라내는 매력이 있다. 어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인데, 신기하게 새롭다. 물론 모든 소설에서 그 나름의 독창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그러고자 하는 노력 만큼이나 덧없으나, 그래서 더욱 이런 글들이 반가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음미할 책은 아니지만 읽는 시간은 아깝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의 소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미덕’일 게다. ^^ 어쨌든, 앞으로 나올 책들도 봐야겠다.
2009/07/19 20:33
[토양이잡담]
99년 12월 어느 날, 어느 술집에서, "너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아이야"란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고작 열 아홉이었단 말이지. 적어도, 앞날에 대한 막연한 희망 정도는 철없게 품고 있던 그저그런 열 아홉, 내게는 그 말이 저주처럼 들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렇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 불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고 생각하는 것. 그게 네 문제야."
정말이지, 그땐 그게 저주라고 생각했다.
4~5년 정도가 지나, 그는 내게 했던 그 말을 후회했고, 사과했다. 자기도 너무 어렸고, 내가 조금 미웠다고도 했다. 잊고 살진 못할 만큼의 꺼림칙함은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어이없는 사과를 받고 나니, 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다 읽은 책을 덮듯 그렇게 잊었더랬다. 어쨌든, 저주라고 생각했으니까. 발화자가 취소하면, 그걸로 된 거라 여겼으니까. 멍청하게도.
그러다가. 얼마 전.
"싫어하지는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않아요." 라고 말하는 나를 봤다.
그리고 곧, 오래도록 잊고 지낸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나는, 소름끼치도록 변한 게 없었다. 그건 저주가 아니었던 거다.
이제서야, '문제'가 뭔지, 조금, 아주 조금 알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렇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 불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고 생각하는 것. 그게 네 문제야."
정말이지, 그땐 그게 저주라고 생각했다.
4~5년 정도가 지나, 그는 내게 했던 그 말을 후회했고, 사과했다. 자기도 너무 어렸고, 내가 조금 미웠다고도 했다. 잊고 살진 못할 만큼의 꺼림칙함은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어이없는 사과를 받고 나니, 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다 읽은 책을 덮듯 그렇게 잊었더랬다. 어쨌든, 저주라고 생각했으니까. 발화자가 취소하면, 그걸로 된 거라 여겼으니까. 멍청하게도.
그러다가. 얼마 전.
"싫어하지는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않아요." 라고 말하는 나를 봤다.
그리고 곧, 오래도록 잊고 지낸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나는, 소름끼치도록 변한 게 없었다. 그건 저주가 아니었던 거다.
이제서야, '문제'가 뭔지, 조금, 아주 조금 알겠다.
2009/07/14 10:24
[책과책읽기]
이제는, 실망하기 위해 보는 건지 아니면 무얼 위함인지 도통 모르겠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 '크로스파이어'. 1998년에 일본에서 초판된 책이, 이제서야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다.
뭐,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시시하다. 재미 자체는 그럭저럭 없진 않은 편이나, '미야베 미유키'가 작가임을 떠올린다면 실망감이 급상승.이 책이 나온 이듬해, 그러니까 1999년에 '이유'라는 소설을 쓴 걸로 알고 있는데, 두 작품이 동일한 작가에게서 나왔다 믿고 싶지는 않다. 10년 전에 쓴 글이라 이모양이다, 라고 변호해 주기에는 그녀의 글들이 갖고 있는 편차가 너무 크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질이 고른 분포를 나타내지는 않는 듯. 이름만으로 덜컥 책을 사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가란 생각이다.
삭막한 도시와 메마른 인간들이 엉키고 달라붙어 만들어내는, 마치 오래된 회벽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을, 미야베 미유키는 실로 능숙히 포착해내는 작가다. 그러면서도 희망에 집착하는, 참 재미 있는 사람인데. 그 과정을 집요하게 써내려간다는 점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와 닮은 듯도 하지만, 정말, 아니지 싶은 문장들이 더러 있다. 삶에 대한 일반적 훈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할 줄이야.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가 제발 좀, 퓨전 형식의 글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있지도 않고 또 평생 닿을 수도 없는 그런 영역에 속해 있는 초능력자들을 끌어와 도덕에 관한 낡은 '썰'을 풀어놓는들, 대관절 그게 무슨 소용인가. 물론 장르소설들 중에서는 드물게 자체적인 세계관을 구현한 명작들도 있기야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면 곤란. 그런데다 '선을 넘지 않는' 그녀의 문장은, 소재 자체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린다. 치카코 아줌마 역시, 정말이지 '여러 모로' 깨는 캐릭터이고.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구닥다리 퓨전 평작 소설을, 그저 '미야베 미유키'가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온 것인지 싶어 뒷맛도 씁쓸했던 소설.
![]() |
크로스파이어 1 -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뭐,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시시하다. 재미 자체는 그럭저럭 없진 않은 편이나, '미야베 미유키'가 작가임을 떠올린다면 실망감이 급상승.이 책이 나온 이듬해, 그러니까 1999년에 '이유'라는 소설을 쓴 걸로 알고 있는데, 두 작품이 동일한 작가에게서 나왔다 믿고 싶지는 않다. 10년 전에 쓴 글이라 이모양이다, 라고 변호해 주기에는 그녀의 글들이 갖고 있는 편차가 너무 크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질이 고른 분포를 나타내지는 않는 듯. 이름만으로 덜컥 책을 사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가란 생각이다.
삭막한 도시와 메마른 인간들이 엉키고 달라붙어 만들어내는, 마치 오래된 회벽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을, 미야베 미유키는 실로 능숙히 포착해내는 작가다. 그러면서도 희망에 집착하는, 참 재미 있는 사람인데. 그 과정을 집요하게 써내려간다는 점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와 닮은 듯도 하지만, 정말, 아니지 싶은 문장들이 더러 있다. 삶에 대한 일반적 훈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할 줄이야.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가 제발 좀, 퓨전 형식의 글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있지도 않고 또 평생 닿을 수도 없는 그런 영역에 속해 있는 초능력자들을 끌어와 도덕에 관한 낡은 '썰'을 풀어놓는들, 대관절 그게 무슨 소용인가. 물론 장르소설들 중에서는 드물게 자체적인 세계관을 구현한 명작들도 있기야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면 곤란. 그런데다 '선을 넘지 않는' 그녀의 문장은, 소재 자체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린다. 치카코 아줌마 역시, 정말이지 '여러 모로' 깨는 캐릭터이고.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구닥다리 퓨전 평작 소설을, 그저 '미야베 미유키'가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온 것인지 싶어 뒷맛도 씁쓸했던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