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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1 [잡담] (18)
1.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행위도 없다고 생각해 왔으나, 요즘 보면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세간에서 통용되는 각각의 혈액형별 성격에 자신을 맞춰간단 느낌이 들어서다. 얼마 전 B형인 친구가 좀 아스트랄한 행동을 하면서 ‘나는 B형이니까'라는 말로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걸 보며 든 생각. 생각해 보면 이런 체험이 처음은 아니었음. A형, B형 , O형, AB형 이렇게 네 가지 혈액형에 따른 각각의 특성을 자신에게 투영시킨달까. ‘A형이라서 나는 소심해' 등 같은 말만큼 별다른 반박 없이 받아들여지는 황당한 명제가 또 있을까? 상당히 재미 있는 현상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겠지 싶다. 장점보다 단점을 정당화하기 편리하니까. 내 경우는 어느 모임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혈액형 얘기도 다르게 듣는 편인데, 최근엔 AB형일 거라는 이야기를 제법 들어서 당황스럽다. 나는 ‘무난하고 평범한' O형이다. -_-
2. 개념은 소비되어야 하는가? ‘그러해서는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질문을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무얼 가리키는지부터 명확히 해야겠으나, 어쨌든 이 맥락에서는 ‘체득' 내지 ‘체화'와는 다른, 개념 인식에 있어서 주체가 발화자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다는 정도로 해두고 싶다. 즉 자기 자신이 직접 이해와 해석의 영역으로 뛰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개념을 언급한다는 의미로서의 ‘소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개념, 그 중에서도 소위 ‘정치적인 개념'들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겠다. 굳이 예를 들자면 민주주의니, 계급이니 하는 것들. 정치라는 것은 결국 보다 나은 삶의 장(물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정의는 정말이지 제각각이지만)을 열고자 하는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행위인 까닭에, 자신이 사고/지향하는 ‘보다 나은 삶'을 이야기하려면 발화자만의 언어로 개념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적어도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개념은 의미를 낳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개념들을 자신만의 사유로 충분히 되씹고 나서 내뱉지 못한다면, 이는 개념에 덧씌워진 바깥의 이미지를 소비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소비될 뿐인 개념은,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참 피냄새 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해서, 얼마 전에 이 주제로 논쟁을 벌일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3. 작금의 세상은 인간에게 존재의 비참함을 강제한다. 구조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인간이 존재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그렇다고 못하겠다. 인권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권, 즉 인간이기에 응당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게, 어떤 근거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호모 사케르로서의 인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모든 맥락에서 해방/배제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날 생명(just life)’일진대,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어떻게 부여되나? 이 날 생명이 인권의 최저점이라면, 동류로서 느끼는 심정적인 연대감, 그 이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보편적인 인권을 긍정함으로써 곧 나의 생존을 담보하려는 것과 닿아 있겠지. 결국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근원적 회의로 이어지지만. 어쨌든, 인구는 좀 많다.
아침 출근길에 이 생각들을 하며 오다가 내릴 곳을 지나칠 뻔 했다. 출근길엔 잡생각하지 말고 그저 자는 게 상책. -_-
4. 흥미로운 현상을 또 하나 발견했다. 이 블로그는, 책 이야기를 쓰면 구독자가 줄어든다. (두둥)
2. 개념은 소비되어야 하는가? ‘그러해서는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질문을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무얼 가리키는지부터 명확히 해야겠으나, 어쨌든 이 맥락에서는 ‘체득' 내지 ‘체화'와는 다른, 개념 인식에 있어서 주체가 발화자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다는 정도로 해두고 싶다. 즉 자기 자신이 직접 이해와 해석의 영역으로 뛰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개념을 언급한다는 의미로서의 ‘소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개념, 그 중에서도 소위 ‘정치적인 개념'들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겠다. 굳이 예를 들자면 민주주의니, 계급이니 하는 것들. 정치라는 것은 결국 보다 나은 삶의 장(물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정의는 정말이지 제각각이지만)을 열고자 하는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행위인 까닭에, 자신이 사고/지향하는 ‘보다 나은 삶'을 이야기하려면 발화자만의 언어로 개념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적어도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개념은 의미를 낳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개념들을 자신만의 사유로 충분히 되씹고 나서 내뱉지 못한다면, 이는 개념에 덧씌워진 바깥의 이미지를 소비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소비될 뿐인 개념은,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참 피냄새 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해서, 얼마 전에 이 주제로 논쟁을 벌일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3. 작금의 세상은 인간에게 존재의 비참함을 강제한다. 구조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연 인간이 존재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그렇다고 못하겠다. 인권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권, 즉 인간이기에 응당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게, 어떤 근거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호모 사케르로서의 인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모든 맥락에서 해방/배제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날 생명(just life)’일진대,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어떻게 부여되나? 이 날 생명이 인권의 최저점이라면, 동류로서 느끼는 심정적인 연대감, 그 이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보편적인 인권을 긍정함으로써 곧 나의 생존을 담보하려는 것과 닿아 있겠지. 결국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근원적 회의로 이어지지만. 어쨌든, 인구는 좀 많다.
아침 출근길에 이 생각들을 하며 오다가 내릴 곳을 지나칠 뻔 했다. 출근길엔 잡생각하지 말고 그저 자는 게 상책. -_-
4. 흥미로운 현상을 또 하나 발견했다. 이 블로그는, 책 이야기를 쓰면 구독자가 줄어든다. (두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