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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7 00:46
(어째 요새 쓰는 도서 관련 포스팅들이 죄다 어두운 이야기들 뿐...)

나는 책을 고르는 분야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재작년 어느 날에 집에 있는 책들의 인덱스 카드도 만들 겸 해서 총 권수와 분포도를 조사해 봤더니 무려 60% 이상이 인문과학 서적이었더랬다. 그 이후 한층 더 심해졌으니 지금은 7~80%에 육박할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 사회과학 서적이 20%, 어학이 5% 정도이고 소설이 약 3% 정도? 대체로 빌려보지 않는 주의기 때문에 별도로 빌려 읽은 책들이(전문 외서 빼고) 없다고 치면 (아. 물론 만화책은 언제나 열외다. ㅋㅋ) 나는 어학 공부하는 것보다 소설을 안 읽는다. 그런데다가 서정적인 소설이나 연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설은 거들떠도 안 본다. 대체로 추리소설, 그것도 일본의 사회추리소설들만을 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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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군가가 추천해줬기도 하고, 또 너무 한정된 분야의 추리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일반 추리소설 책에 도전해봤다. 일본 작가인 아야츠지 유키토가 지은 "암흑관의 살인(1~3)"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일본의 추리소설들이 사회문제와 얽혀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에 반격(?)을 가하며 정통 추리소설로 회귀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 하에 쓰여졌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의 현안은 일단 제껴두고 등장인물들간의 내적 관계와 기발하고 절묘한 트릭에 중점을 두자는 얘기다.


개략적인 줄거리를 얘기해 보자면, 주인공인 츄야(별명이다)는 사고로 잠시 기억을 잃었던 그를 돌봐준 우라도 겐지를 따라 그의 본가를 방문하게 된다(물론 츄야는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억을 되찾았다.). 겐지의 본가는 구마모토 산 속에 있는 일명 '암흑관'이라 불리는 외딴 '성'이다. 저택의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까만 색으로 꾸며져 있어서 암흑관이라 불린다. 그런데 그가 방문한 날 저녁 갑자기 이름 모를 청년이 저택의 별채(정확하게는 탑) 꼭대기에서 추락해 기억을 상실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동시에 온통 기이하거나 아니면 수상할 뿐인 암흑관의 식구들. 츄야는 겐지의 초대를 받아 우라도 집안 외부인은 절대 참석할 수 없게 되어 있는,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달리아의 날' 연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게 되고, 집에서는 연이어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는, 이야기다. 분량이 꽤 되어서(총 3권)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하고, 제3자의 뒤죽박죽인 시점과 츄야의 시점이 혼재되어 있는 탓에 중간중간 방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암흑관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을 창조해 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작가의 노력과 성실함에는 감탄이 나온다. 실제로 책을 보면 암흑관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부 설계도가 있을 정도다. 전반적인 세팅도 참 섬세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정통' 추리물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의 가장 큰 단점은 중간에 트릭이 뭔지 알아버리면 그걸로 끝이라는 거다. 바꾸어 말하면 김빠진단 이야기.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예전에 영화 '올드보이'를 봤을 때도 미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딸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난 그 영화가 참 재미없었다. 뭔가 다른 게 있을 줄 알았으니까. 이 책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순간부터 '이거 !#$ 이겠는데?'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맞아버렸다. 뭔가 반전이라던가 예상치 못한 결말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저 뻔한 흐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추리력이 뛰어나다거나 사고가 논리적이라거나 그렇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_-!

사실 이런 소설은 트릭 때문에 읽는 게 큰데, 그걸 빼고 나니 다 읽고 나서 참 허탈했다. 뭐 이런 콩가루 집안이 다 있어 하는 생각과 함께. 취향이 맞는 사람이라면 (나와는 달리) 재미있게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더군다나 암흑관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상상하는 즐거움도 주기 때문에 혹평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빌려볼 걸 하는 생각은 든다. 그냥 원래 보던 책들이나 봐야겠다.

덧) 내 방의 서가는 4면 중 2면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면은 신간 코너다. - -; 얼마 전 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오셔서는, 신간 쪽을 훑어보시더니 "어째 넌 요새 사는 책들이 전부 다 살인 뭐 이런 책들이냐?"라고 하셨다. 그러게요, 아부지. 왜 그럴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