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800만의 신이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토속 신앙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생활 도처에 종교와 교차되는 지점들이 널려 있다는 뜻도 된다. 기독교가 전 인구의 1%에 불과하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사에서 태어나 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나라. 일반 주거 지역은 물론이고 도심지 곳곳에 신사가 자리잡고 있는 나라. 아침에 일어나면 조상님을 모신 불단에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나라. 쿄코쿠 나츠히코 공식 웹사이트 캡처 화면
이러한 까닭에 일본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민간 전승이 풍부하다. 특히 모노노케(物の怪) 혹은 요괴에 관한 자료들이 많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100년이 지난 물건들에는 그 나름의 혼이 깃들어 모노노케가 된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괴담은 사실 일본에서 넘어와 변형된 것이 많은데,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원제: 모노노케히메)는 멋들어진 번역이기는 하나 엄밀하게는 오역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노노케’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는 사실 난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환경이 이렇게 풍요(!)로운 만큼 민속학이라는 학문 분야도 잘 발달되어 있다. 일본 민속학의 아버지라고도 하는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国男)’의 경우 그의 글만을 따로 모아서 출판한 전집이 있을 정도인데, 민속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본의 전통에 관해 경계를 넘나드는 내용인데다가 문체 또한 유려해서 문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의 전통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길 권하는 책이다.
이 자리에서 소개할 쿄코쿠 나츠히코(京極夏彦)의 경우, 사실 정식 민속학자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일본의 민속학 장르를 현대에 맞게 소설로 펼쳐낸 독특한 인물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지금은 계간잡지 <요괴>의 책임편집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부메의 여름>을 시작으로 요괴/모노노케라는 소재에 추리 기법을 접목시킨 소설들을 써내 지금은 당당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항간에 떠도는 괴이한 이야기>의 경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쿄코쿠 외에도 일본에는 요괴/모노노케에 관한 소설들이 넘쳐 난다. 서점에 가면 이 분야의 소설들만 독립적으로 분류해 놓았을 정도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쿄코쿠 나츠히코가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해당 분야 소설들 중에서도 유독 조명을 받고 각종 상을 받았던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철학을 작품 속에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상한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일명 쿄코쿠도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소설들 속의 등장인물, 쿄코쿠도의 입버릇과도 같은 말이다. 얼핏 듣기에는 근대의 합리주의적 사고 방식의 산물과도 같은 이 말을 곧잘 하는 쿄코쿠도는 사실, 고서점의 주인이자 음양사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괴이한 일들, 그러니까 요괴 혹은 모노노케가 등장하는 사건들을 음양사의 시각과 현대인의 시각을 동시에 갖고 접근하는 사람이다. 현대의 철학과 과학, 심리학 등에 정통해 있으면서도 일본 전통의 민속 문화와 관습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치는 것들은, 일견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그 나름의 이유와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쿄코쿠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일본 사회(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누구나 마주칠 수도 있는 그러한)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사회적인 병폐와 조우하게 된다. 인간이기에 생각하고 저지를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과 그로 인한 결과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쿄코쿠 나츠히코가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바로 이렇듯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요괴/모노노케를 등장시켜 상대화시킨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도 하나의 생물이고 유한적인 존재일 뿐, 영원하지도 않고 늘 옳지도 않으며 절대적이지도 못하다. 그리고 이는 완전히 이질적 차원에 속하는 요괴/모노노케를 대조군으로 놓고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괴/모노노케에 관한 여러 소재들도 분명 매력적이지만, 쿄코쿠 나츠히코의 소설들이 인기 있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과 더불어, 추천하고 싶은 작가다.
덧) 국내에서는 '교코쿠 나츠히코'라고 되어 있다. (<우부메의 여름> 이미지 출처는 교보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