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그리고.

해가 교차하는 즈음이다. 이제 며칠 후에는 만 나이로 따져도 서른하나. 삼십 년을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가도, 나이를 따지고 해를 셈하는 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머쓱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러한 인식이 세계를 규정하고 삶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텐데, 나는 지금 어떤 형태로 굳어지기 직전의 시간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만 더 지나면, 어찌할 수 없는 단단한 무언가가 벗기 힘든 껍데기처럼 꼭 달라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될 터다. 그 나름의 의미도 가치도 분명 있겠지만, 글쎄, 꼭 이 길뿐일까? 이미 나는 정해진 레일 위에 올라서 있고, 내리거나 멈추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해져버렸을까? 하는 의문으로 가득했던 한 해가 지나려 한다.

그리고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보았던 이런저런 모험 중 가장 크고도 무모한 일일 테지. 내년 초를 넘기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여기에 없을 것이다. 아니, 한국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바쁘고 정신없는 하반기를 보냈다. 회사에는 11월 초에 퇴사원을 냈고, 오늘까지 근무하고, 떠나기 위한 이런저런 수속을 진행 중이고, 가족에게도 무사히 통보했고…… 무엇보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예정대로라면 이곳에서 보낼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어디로 가서 얼마 동안 어디에 있다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뚜렷한 계획도 아직 없다. 못다 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작지 않지만, 연구자가 될 생각은 없는 데다 밥벌이 문제가 커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공부를 택하지 않을 경우 가진 것도, 지닌 재주도 변변치 못하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대체 내게 무엇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토록 무모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지금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더 굳어져버리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고민을 해도 되는 마지막 기회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이러다 1년 뒤에 캐리어 질질 끌고 울면서 한국행 비행기를 다시 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일일 거고 적어도 지금은, 돌아올 생각이 없다. 아니, 그럴 각오로 떠난다. 쓰다 보니 이상하게 비장함이 흐르는데, 이런 식으로 심리적인 배수진을 치지 않고서는 금세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약해질 것 같아서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 누구보다 달뜨고 설레어하는 게 나 자신인 만큼. 

한창 고민하던 올가을, 제대로 미친년처럼 살아보라던, 돌아오지 말라던 A의 조언을 떠올린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있는 힘껏 도전해보고, 안 되면 가뿐히 돌아와서 당신 회사에 취직하라며 격려해주시던 J 대표님의 말을 떠올린다. 너 없으면 정말 많이 허전하고 슬프겠지만 우리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닐 테니 함께 열심히 살아보자며 꼭 안아주곤 하는, 정말 많이 좋아하는 J 언니 품의 온기도. 내 예쁜이 삼양의 애정 어린 지지도…… 그리고 여기에 미처 다 적지 못하는, 그 수많은 마음과 응원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그저 지금은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채운다.  

어쨌든 떠나기 전까지 날백수 생활을 조금 할 텐데, 그동안만큼은 좋아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들 잔뜩 만나고 가려고 한다. 비행기표 예약을 비롯해 일단은 퇴사 이후 하려고 미루어두었던 모든 일들 중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내 소중한 사람들. 더없이 보고 싶을 사람들. 지금은 정말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만 이야기해둔 상태여서, 이제부터 조금씩조금씩, 마음에 잔뜩, 꾹꾹 눌러 담아 가고 싶다.    

*

그러한 고로 아마 이 블로그는 내년 봄부터는 토양이의 가난한 해외 체류기(를 빙자한 하소연) 가득한 곳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책 읽는 토양이’라는 이름의 블로그이기는 하지만 책 이야기 대신 사소한 잡담기가 된 지도 오래되었으니 딱히 책 이야기가 궁금하시지도 않을 거라는 핑계를 대봅...쿨럭. 아마도 이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텐데, 그 모든 흔적들을 가능한 한 차근차근히, 꼭꼭 담아두려고 합니다. (이젠 블로그 열심히 할 거예요!) 변방의 잡담 블로그를 잊지 않고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작은 소식 하나 전하며 부족하나마 새해 인사도 함께 드려요. 모두모두, 행복한 한 해 맞이하셨으면, 그리고 내년에는 이 공간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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