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그리고 『리스본행 야간열차』

어떤 순간이든 강박 없이는 살기 힘들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는데, 그만큼 책임이나 의무를 자발적으로 떠안지 못하는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겠다. 스스로를 강제로 몰아붙이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공감'에 대해 여러모로 곰곰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무엇을 가리켜 '공감한다'라 규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저 '내가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자기만족 혹은 자위행위를 초월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내게 부족한 여러 것들 중에서도 최악이다 싶은 지점이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곤 있지만. 글쎄, 어떤 한 (혹은 여러) 생각과 감정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게다가, 의지가 중요한 문제도 아니잖아? 어쨌거나 이는 합의된 착각에 기반할 것이고 모종의 기준선도 존재할 터인데, 도무지 생각을 정치하게 풀어낼 수가 없다. 뭐, 달리 보면 내 나름의 해석을 가질 수 없다는 점, 적어도 지금은 내 손에 닿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절망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는 상상력이다. 빈곤한 상상력 지반을 가지고 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질 낮은 푸념과 하소연, 그리고 치졸한 인정투쟁만 남겠지. 정말이지 나는 나를 혐오하는 데에, 그리함으로써 내게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나를 흔들어놓은 책 하나와 만났다. 
리뷰성 글을 쓰는 것조차 책에 대한 결례이지 싶어 짧게만 남겨본다.『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를 읽은 후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어찌할 수 없으리만치 사로잡혔다고 하는 게 더 맞다. 겨우 잠잠해졌던 이탈에의 욕구가 살아난 건 꽤 곤혹스럽지만, 삶을 구성하는 여러 흐름들을 되짚어보게 됐다. 하나의 시선을 더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체스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고, 독일어를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언젠가 이 책을 원어로 읽어낼 수 있다면, 하여 프라두와 그레고리우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내 삶의 궤적이 또 한 번 방향을 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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