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소국 한 다발

언제였더라. 딱 10년 전인 건 분명한데, 계절은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오늘처럼 적당히 선선하고 햇살도 바람도 좋은 그런 날이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꽃집에 들러 소국을 샀다. 대학 1학년이었던 그 때는 생활비 벌어 쓰기도 힘에 부쳤던 터라 많이는 사지 못했다. 한아름이라 하기엔 조금 민망한, 그렇다고 너무 적지도 않은, 소국 다발. 왜 소국이었을까. 왜, 꽃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먹을 거리는 이미 많이 사갔었고, 새로이 마땅한 게 없었다. 그리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소국이 참 예뻤었다.

그의 집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다. 조금은 오래된 그 집 식탁에서, 그와 그의 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도란도란 밥 먹는 게 즐거웠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가끔 집에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주길 바랐었고, 나도 그게 좋았다. 소박했던 그 식탁은, 정말 좋았었다.

내가 사들고 간 소국을 받은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꽃은 사오는 게 예의가 아닌 건가? 아니면 싫어하시나? 소국은 별로인 걸까? 괜한 짓을 했단 생각으로 주눅이 들기 시작한 나는 꽃이 마음에 안 드시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또 한참을 말이 없으시다가.. 내 손을 꼭 쥐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당신 평생 누군가에게 꽃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고. 꽃이 참, 곱다고.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지만, 그 작은 꽃다발을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던 할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소국을 보며 미소짓던 그녀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정말 꽃같이 예뻤으니까. 그와는 이제 가끔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할머니를 본 건 아마 그게 마지막이었지 싶다. 세상에. 벌써 10년이나 지났나 싶은데...오늘, 나는 빈소에 다녀왔다.

밤을 꼬박 샜다는 그는 피곤해서인지 아닌지 모를 충혈된 눈으로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할머니가 좋아하실 거야. 꽃 준 애는 잘 있냐고, 가끔 물어보시곤 했었어. 너가 유일하게, 우리 할머니한테 꽃 준 사람이잖아.”라고 하면서. ...몰랐는데, ‘꽃 준 애’로 기억하고 계셨나보다. 나는 그렇게...기억되고 있었나보다.

하얀 국화를 사진 옆에 올려놓고는, 어째 나는 국화 종류만 드리네, 하는 생각을 했다. 또 소국 생각이 났다.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불현듯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가슴에 왕사탕 한 개가 제대로 얹힌 것처럼 뻐근해왔다.

오랜만에 본 사람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는 일어섰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빈소를 나왔다. 아니야. 울면 안 되지. 10년 동안 찾아뵌 적도 없는데, 안부를 궁금해한 적도 그리 많지 않은데, 이제와 영정 앞에서 눈물 흘리다니 그건 너무하잖아. 참아야지. 그래도. 가시기 전에 꽃 한 다발 더 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그냥, 그 웃음만 기억해야지. 더없이 꽃같았던 그 때 그 웃음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0 Comment 6
prev 1 ... 65 66 67 68 69 70 71 72 73 ... 96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