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전체 (195)
책과잡담들 (138)
일본이야기 (30)
음식및기타 (21)

rss


2009/04/08 12:45
야쿠마루 가쿠가 쓴 ‘천사의 나이프’는, 딱히 참신하다거나 한 건 아니어서 책 자체에 대해 그다지 쓸 말은 많지 않을 듯. 일본의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인데, 죄의식에 좀더 천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재미가 없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엉성한 뒤끝이 썩 개운치는 않음.

천사의 나이프 - 6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황금가지

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현대 사회는 모종의 정신분열을 조장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예전과 비교해 인간의 삶을 조건짓는 (특히 물리적인) 요소들은 상당부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바깥으로 자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삶에 있어서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병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할 수 없는데, 온전할 것을 요구받는 거죠. '내'가 스스로를 지배 가능한 사회 따위 존재한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되면, 삶의 규율인 윤리는 분열이 만들어낸 틈으로 사라지고 죄의식은 사치스런 개념이 되고 맙니다. 끊임없이 변이하는 조건 하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설사 윤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저마다의 몫입니다. 윤리와 죄의식은 '옵션'이 되어버린, 서글픈 시대.    


푸코와 그리 친하지는(...) 않으나 그가 이야기하는 ‘자기배려’는, 그래서 여러 모로 귀기울여야 하는 개념이지 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내가 나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나와 나 자신의 권력관계가 타자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자기배려'야말로 요즘 시대의 '구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스승이라는 존재가 매우 중요해지지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주체가 오직 자신 뿐이라는 이야기는 지독하게 묵직하고 또 희망적입니다. 가능성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천사의 나이프 이야기에서 옆으로 많이 샜군요. 어쨌든 이 책을 통해  '개인의 영역으로 침잠해 버린 죄의식'을 보아서 답답했고, 그리하여 서글퍼진 마음에 쓴 글임.
저자 역시도 이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고, 또 갈수록 다 비슷비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덧붙여 '13계단'이라는 책(역시 일본소설)도 이 '천사의 나이프'와 비슷합니다. 사회 그리고 법체계가 되갚아줄 수 없는 ‘피해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닮았어요. (그리고 13계단이 조금 더 재미있음;)

덧1) 경어체로 쓰니 글이 길어져서 약간 고민 중. 어쨌든 조정 작업이 필요할 듯.

2) 곰돌. 넌 읽지 마라. -_-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