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8 22:55
[책과잡담들]
지난 토요일 오전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봤습니다. 재일한국인이자 일본군 위안부였던 송신도 할머니의 10년간 기록을 담은 영화입니다.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옛 위안부로, 1993년에 국가를 상대로 보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 소송은 결국 2003년에 최고재판소에서 기각되었구요. 전부터 굉장히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소원성취했음. 개봉관이 너무 적어서 안타깝네요.
(아래의 글은 영화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한 것이라서요.)
군위안부는 주지하듯 식민지 시절 일본이 자행한 성노예제도입니다. 확인된 바로는 제1차 상하이 사변(1932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죠.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때에는 '카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이라고 하는, 해외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던 일본 여성들이 군위안부의 역할을 대신했지만 전쟁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또 일본이 제국주의적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식민지나 점령지의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에 종사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군은 무엇 때문에 군위안부를 필요로 했을까요? 추오대학교 교수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에 따르면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즉 ① 일본 군인에 의한 강간 방지 ② 성병 만연 방지 ③ 위안(慰安) 제공 ④ 스파이 방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하며, 이는 어디까지나 군 자료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안 되지만, 적게는 8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 가량의 여성들이 군위안부로 동원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군위안부 중에서 조선 여성의 비율은 50% 이상이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만, 이 추정치는 1940년도 군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라서 중일전쟁과 동남아 침략이 빈번해지는 40년대에는 비율의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심지어는 동남아에 있던 네덜란드 여성들도 납치되어 끌려갔다고 할 정도니까요.) 참고로 1940년에 대본영 육군부가 군내 성병 감염 실태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지역에서 신규 성병 감염자인 일본군 병사의 '상대 여성'은 조선과 중국 여성이 전체의 8~9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또 미성년자의 비율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절반 이상이었다고 하니까요.
덧붙여 당시 조선 내에 주둔한 일본군 및 총독부는 조직적으로 조선 여성들을 모았습니다. 기존의 인신매매 그리고 성매매 관리조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하는데, 윤명숙의 '일본의 군대위안소 제도와 조선인 군대위안부' 논문이 이해에 큰 도움을 줍니다.
이 군위안부의 존재는 1991년에야 비로소 드러났습니다. 군위안부의 피해자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이듬해인 1992년 요시미 교수는 군의 관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1992년 7월의 카토 담화는 '정부 관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1993년의 코노 담화는 군 관여는 물론이고 강제된 일이었다는 것까지 인정하며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혀 화제와 논란을 몰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있었던 1991년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바 없습니다. 군위안부 재판들은 차례차례로 기각되었고, 일본 교과서의 군위안부 기술 검정 문제도 오히려 더욱 나빠졌죠. 할머니들께 (얄팍한) 보상금을 전달하려는 국민기금조차 2007년 3월에 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진실의 해명과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마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할머니들은 점점 더 늙어만 가실테죠.
통탄할 일은, 정부에서는 이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을 체결한 이후 '식민지 시절 강제 징병/징용되었다가 일본에서 사망한, 연고가 없는 한국인의 유골을 일본에 묻어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한 국가의 수장이 취한 것이라고 믿기 힘들죠.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관련 문제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 바 있지만(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설립이 대표적), 지금은.. 참 무어라 할 말이 없네요.
식민지 잔재를 올곧게 청산해야 좀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리라고 믿어요. 이는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그른 게 무엇인지 되새기는 중요 작업이니까요. 무엇이 바른 것인지 제대로 후세에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할 테구요. 무엇보다 옛 군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 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 아닐까요?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한 논의를 여기에까지 끌어올 생각은 없으나,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글맺음을 대신하여, 일본의 전쟁책임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시미 요시아키의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추천합니다. 일본 내에서 몇 안 되게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학자이며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군위안부는 주지하듯 식민지 시절 일본이 자행한 성노예제도입니다. 확인된 바로는 제1차 상하이 사변(1932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죠.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때에는 '카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이라고 하는, 해외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던 일본 여성들이 군위안부의 역할을 대신했지만 전쟁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또 일본이 제국주의적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식민지나 점령지의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에 종사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군은 무엇 때문에 군위안부를 필요로 했을까요? 추오대학교 교수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에 따르면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즉 ① 일본 군인에 의한 강간 방지 ② 성병 만연 방지 ③ 위안(慰安) 제공 ④ 스파이 방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하며, 이는 어디까지나 군 자료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안 되지만, 적게는 8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 가량의 여성들이 군위안부로 동원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군위안부 중에서 조선 여성의 비율은 50% 이상이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만, 이 추정치는 1940년도 군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라서 중일전쟁과 동남아 침략이 빈번해지는 40년대에는 비율의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심지어는 동남아에 있던 네덜란드 여성들도 납치되어 끌려갔다고 할 정도니까요.) 참고로 1940년에 대본영 육군부가 군내 성병 감염 실태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지역에서 신규 성병 감염자인 일본군 병사의 '상대 여성'은 조선과 중국 여성이 전체의 8~9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또 미성년자의 비율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절반 이상이었다고 하니까요.
덧붙여 당시 조선 내에 주둔한 일본군 및 총독부는 조직적으로 조선 여성들을 모았습니다. 기존의 인신매매 그리고 성매매 관리조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하는데, 윤명숙의 '일본의 군대위안소 제도와 조선인 군대위안부' 논문이 이해에 큰 도움을 줍니다.
이 군위안부의 존재는 1991년에야 비로소 드러났습니다. 군위안부의 피해자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이듬해인 1992년 요시미 교수는 군의 관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1992년 7월의 카토 담화는 '정부 관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1993년의 코노 담화는 군 관여는 물론이고 강제된 일이었다는 것까지 인정하며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혀 화제와 논란을 몰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있었던 1991년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바 없습니다. 군위안부 재판들은 차례차례로 기각되었고, 일본 교과서의 군위안부 기술 검정 문제도 오히려 더욱 나빠졌죠. 할머니들께 (얄팍한) 보상금을 전달하려는 국민기금조차 2007년 3월에 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진실의 해명과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마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할머니들은 점점 더 늙어만 가실테죠.
통탄할 일은, 정부에서는 이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을 체결한 이후 '식민지 시절 강제 징병/징용되었다가 일본에서 사망한, 연고가 없는 한국인의 유골을 일본에 묻어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한 국가의 수장이 취한 것이라고 믿기 힘들죠.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관련 문제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 바 있지만(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설립이 대표적), 지금은.. 참 무어라 할 말이 없네요.
식민지 잔재를 올곧게 청산해야 좀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리라고 믿어요. 이는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그른 게 무엇인지 되새기는 중요 작업이니까요. 무엇이 바른 것인지 제대로 후세에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할 테구요. 무엇보다 옛 군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 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 아닐까요?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한 논의를 여기에까지 끌어올 생각은 없으나,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글맺음을 대신하여, 일본의 전쟁책임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시미 요시아키의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추천합니다. 일본 내에서 몇 안 되게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학자이며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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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군대위안부 - ![]() 요시미 요시아키 지음, 이규태 옮김/소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