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2 23:22
[책과잡담들]
'범죄소설의 사회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즐거운 살인'은 맑시스트 경제학자인 에르네스트 만델이 썼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그래봤자 채 두 달도 안 지났지만;) 단연 최고라고 말하겠습니다. 읽는 이에게 짜릿한 지적 쾌감을 줄 수 있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나아가 그 이상을 충족시켜주고 또 생각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했으니, 책을 읽어 이 이상의 소득은 없지 싶습니다.
만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세계에서 팔려 나간 범죄소설은 100억 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책이 처음으로 출판된 것이 1984년이니 100억부라는 것도 아마 그 때까지의 기록일 테고, 지금은 그보다 더 한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이토록 범죄소설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물론 '범죄소설'이라는 카테고리 내에는 다양한 하위 분류들이 존재합니다. 그저 살인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모든 소설이 곧 범죄소설인 것은 아니에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범죄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구성 요소 그리고 전개 방식을 달리 했지만, 이들 모두를 아울러 '범죄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살인을 즐기는 것'에 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범죄소설을 읽음으로써 기분 전환을 꾀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운명의 비극에 주목하지, 그 속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을 보며 쾌감을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요.
만델이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16세기로, 봉건제가 몰락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인'이라는 소재 자체가 16세기 들어 새로이 부각된 것은 아닙니다. 왜, 어느 특정 시점부터 범죄소설이 탄생하고 널리 읽히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만델은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상품화하면서 인간의 죽음 역시 소비되는 상품의 범주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만델은 탁월한 분석력을 드러내는데, 죽음이 사용 가치에서 교환 가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상황, 즉 자본과 부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인간은 소외당하고, 그가 가진 유일한 가치인 노동력 행사에 반드시 필요한 육체에 더욱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즉 "죽음의 물신화, 이것이 바로 범죄소설의 핵심(p.81)"인 것입니다.
나아가 자본주의 양식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체'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되면서, 대리 폭력이라는 왜곡된 형식으로나마 폭력에 대한 욕구와 충동을 승화시킵니다. 특히 임금 노동자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범죄소설은 이들의 '심리적 아편'이 되어주었다고도 말합니다. 즉, 감내하기 어려운 일상의 고통에서 범죄소설을 통해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한다는 이야기예요.
이 책은 범죄소설의 역사인 동시에 범죄사, 그리고 사회사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범죄소설의 발전 과정을 보면 당대의 범죄가 어떠했는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봉건지주들에 대한 '선한 악당'들의 반란에서 시작해 점차 조직화하고 거대해지는 범죄들, 때로는 국가에 대한 범죄도 일어나고 또 때로는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죠. 그리고 "사실상 범죄소설의 변화 과정은 마치 거울처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부르주아 사회의 사회적 관계, 아마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그 자체의 변화 과정까지도 반영(p.240)"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듣는 범죄들은 사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는 범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례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기업들을 보세요.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범죄인지 뚜렷하게 구분지을 수 있을지요. 이 책은 '범죄'가 과연 무엇인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마지막 챕터에서 만델은 오늘날의 범죄소설 주인공들은 다시 최초 형태의 '악당'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합니다. 불법적인 영웅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범죄자들은 옛날 악당들과 근본적으로 다른데, 이전 세기의 악당들이 근본적으로 뚜렷한 목적(주로 평등)을 지닌 이들이었던 반면 20세기의 악당은 다소 환멸에 젖은, 불평등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체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기에, 보다 고차원적인 사회적 가치들이 동시에 등장해야만 할 것이라며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역사유물론을 이렇게 적용시킬 수도 있구나 싶어 놀랐습니다. 역사유물론(저는 '사적 유물론'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합니다만)이라는 방법론을 범죄소설에 적용시켜 일관된 사회사를 설명하고 있는 동시에, 이제는 해묵은 것으로까지 여겨지는 역사유물론을 되살리다니. 역시 이론은, 증명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본래의 가치를 드러내는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대단한 학자입니다.
또한, 자본주의에 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면서도 범죄소설 역사에 대해 제공하고 있는 해박한 지식과 이해도 이 책의 매력입니다. 정말이지 만델은 엄청난 범죄소설 애호가였던 듯 합니다. (만델이 들고 있는 범죄소설 작가들과 책에 대해 1/10이나 알까요, 저는?) 무엇보다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이 책을 몇 번이고 읽게끔 해줍니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과객님께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원래 서평을 쓸 때 책 본문을 인용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예외로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의 구절이 대표적일 듯 싶어요.
![]() |
즐거운 살인 - ![]()
에르네스트 만델 지음, 이동연 옮김/이후
|
만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세계에서 팔려 나간 범죄소설은 100억 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책이 처음으로 출판된 것이 1984년이니 100억부라는 것도 아마 그 때까지의 기록일 테고, 지금은 그보다 더 한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이토록 범죄소설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물론 '범죄소설'이라는 카테고리 내에는 다양한 하위 분류들이 존재합니다. 그저 살인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모든 소설이 곧 범죄소설인 것은 아니에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범죄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구성 요소 그리고 전개 방식을 달리 했지만, 이들 모두를 아울러 '범죄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살인을 즐기는 것'에 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범죄소설을 읽음으로써 기분 전환을 꾀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운명의 비극에 주목하지, 그 속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을 보며 쾌감을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요.
만델이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16세기로, 봉건제가 몰락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인'이라는 소재 자체가 16세기 들어 새로이 부각된 것은 아닙니다. 왜, 어느 특정 시점부터 범죄소설이 탄생하고 널리 읽히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만델은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상품화하면서 인간의 죽음 역시 소비되는 상품의 범주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만델은 탁월한 분석력을 드러내는데, 죽음이 사용 가치에서 교환 가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상황, 즉 자본과 부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인간은 소외당하고, 그가 가진 유일한 가치인 노동력 행사에 반드시 필요한 육체에 더욱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즉 "죽음의 물신화, 이것이 바로 범죄소설의 핵심(p.81)"인 것입니다.
나아가 자본주의 양식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체'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되면서, 대리 폭력이라는 왜곡된 형식으로나마 폭력에 대한 욕구와 충동을 승화시킵니다. 특히 임금 노동자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범죄소설은 이들의 '심리적 아편'이 되어주었다고도 말합니다. 즉, 감내하기 어려운 일상의 고통에서 범죄소설을 통해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한다는 이야기예요.
언젠가 에른스트 블로흐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부르주아 사회는 거대한 미스터리처럼 돌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부르주아 사회에서 당신은 부지런히 일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불가사의한 이유로 그 일이 모조리 망해버린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당신은 노예처럼 뼈빠지게 일을 하고, 기계나 십장이 강요하는 규율을 모두 준수하면서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런데도 당신을 늘 해고당한다. 더 심한 경우, 당신은 예기치 않게 경기 후퇴나 장기적 불황, 심지어는 전쟁으로 타격을 입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당신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불가사의한 막후의 음모자가 이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미스터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보면 당신은 소외감을 덜 느낄 것이다.(pp.130~131)
이 책은 범죄소설의 역사인 동시에 범죄사, 그리고 사회사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범죄소설의 발전 과정을 보면 당대의 범죄가 어떠했는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봉건지주들에 대한 '선한 악당'들의 반란에서 시작해 점차 조직화하고 거대해지는 범죄들, 때로는 국가에 대한 범죄도 일어나고 또 때로는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죠. 그리고 "사실상 범죄소설의 변화 과정은 마치 거울처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부르주아 사회의 사회적 관계, 아마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그 자체의 변화 과정까지도 반영(p.240)"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듣는 범죄들은 사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는 범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례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기업들을 보세요.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범죄인지 뚜렷하게 구분지을 수 있을지요. 이 책은 '범죄'가 과연 무엇인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제 아무리 이런 기업들을 범죄 행위로 종종 처벌하거나 이보다 훨씬 드물게는 파산시키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야말로 이런 기업들을 양산하고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실질적으로, 이들 모두는 하나의 체제인 것이다. 이처럼 체제 일반을 지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각 부분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p.196)
마지막 챕터에서 만델은 오늘날의 범죄소설 주인공들은 다시 최초 형태의 '악당'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합니다. 불법적인 영웅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범죄자들은 옛날 악당들과 근본적으로 다른데, 이전 세기의 악당들이 근본적으로 뚜렷한 목적(주로 평등)을 지닌 이들이었던 반면 20세기의 악당은 다소 환멸에 젖은, 불평등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체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기에, 보다 고차원적인 사회적 가치들이 동시에 등장해야만 할 것이라며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역사유물론을 이렇게 적용시킬 수도 있구나 싶어 놀랐습니다. 역사유물론(저는 '사적 유물론'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합니다만)이라는 방법론을 범죄소설에 적용시켜 일관된 사회사를 설명하고 있는 동시에, 이제는 해묵은 것으로까지 여겨지는 역사유물론을 되살리다니. 역시 이론은, 증명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본래의 가치를 드러내는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대단한 학자입니다.
또한, 자본주의에 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면서도 범죄소설 역사에 대해 제공하고 있는 해박한 지식과 이해도 이 책의 매력입니다. 정말이지 만델은 엄청난 범죄소설 애호가였던 듯 합니다. (만델이 들고 있는 범죄소설 작가들과 책에 대해 1/10이나 알까요, 저는?) 무엇보다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이 책을 몇 번이고 읽게끔 해줍니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과객님께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원래 서평을 쓸 때 책 본문을 인용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예외로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의 구절이 대표적일 듯 싶어요.
범죄소설의 역사는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와 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회적 역사이다. 왜 [범죄소설이라는] 특정한 문학 장르의 역사에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가 반영되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즉,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는 사유 재산의 역사이기도 하며 사유 재산의 부정, 즉 간단히 말해서 범죄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는 개인들의 욕구나 정서, 그리고 기계적으로 부과된 사회 개량주의의 형태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모순의 역사이기도 하거니와, 범죄 속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부르주아 사회 자체가 범죄를 조성하고, 범죄를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에는, 아마도 부르주아 사회가 범죄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p.241)
비록 범죄 자체가 시스템화되어 있는 사회에 살고는 있지만, '그 너머의 삶',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를 부여 가능한 사회'를 상상해야만 할 것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