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컬티즘: 부제가 아까운 책

아우크스부르크 대학 유럽 민속학 교수인 자비네 되링만토이펠이 쓴 ‘오컬티즘(원제: Das Okkulte)’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전히 제목에 낚였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글 초반부터 이렇게 부정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오컬티즘 - 2점
자비네 되링만토이펠 지음, 김희상 옮김/갤리온

이 책은 계몽주의가 생겨난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컬티즘’이 어떻게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휘둘러왔는지 총 8장에 걸쳐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오컬티즘에 말려든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이들이나 귀족 사회의 일원들도 제법 있었지만, 주류는 아니었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 전문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쉽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오컬티즘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더욱 깊이 침투합니다.

오컬티즘이 양지로 올라와 대중적인 지지도와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미디어의 힘이 가장 컸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계몽주의를 널리 전파한 주역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싸구려 읽을 거리’들을 대량으로 퍼뜨린 주범이기도 한 것입니다. ‘텍스트’는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라틴어가 소수를 위한 고급 언어였던 까닭에 좀처럼 텍스트에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제 자기네 언어로 된, 쉽고도 가벼운 소재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컬티즘은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빨리 적응했고 또 시장을 훌륭하게 이용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출처조차 모호한) 방법들, 다양한 민간요법들, 요정을 비롯한 은밀한 존재들의 이야기들, 심지어 타지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기묘한 사건들까지도 적은 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골치 아픈 (그리고 지금 당장 나와 상관 없는) 철학 및 사상에 관한 텍스트보다, 이쪽에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계몽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오컬티즘은 미디어의 성장과 더불어 날이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광범한 보급은 오컬티즘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구글 등에서 단어 몇 개만 검색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오컬티즘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자는 우려의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폭주’할 것이란 거죠. 그 어떤 사상과 시대적 흐름도 오컬티즘을 저지하지 못했거니와, 익명성이 담보되는 요즈음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대략 이 정도로 책 내용을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저자가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오컬티즘’은 결국 ‘신비주의’와 관련 분야들을 아우르는 상당히 모호한 단어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 단어의 외연도 엄청나게 확장된 까닭에 한 두 문장으로 정의내리는 것도 사실 무의미한 작업이겠으나, 문제는 두루뭉술한 용어일수록 분석 기준으로 삼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면 말해 무엇할까요.

인쇄술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대량으로 확산된 싸구려 읽을 거리들은, 혹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무민하려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전 같았으면 이 분야에 끼지도 못했을 하층 계급이었다고도 하고요. 일부에게만 허용되었던 행위들, 예를 들면 미래를 알아본다든지 병을 낫게 해준다든지 하는 것들을 위의 읽을 거리들이 제공하는 괴상한 정보들에 힘입어 마구잡이로 행하면서 돈벌이를 했다는 그런 이야기.

물론 저자가 제공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과 근거들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질릴 만큼) 충분해요. 그리고 사실과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글 곳곳에 저자의 가치 판단이 들어간 문장들이 제법 있어서 말이지요. 점 치는 행위가 예전에는 일부 허락된 이들에게나 가능했다는 부분이 좋은 예 중 하나인데, 그렇다면 그 때에는 ‘점 칠 수 있는 자격’을 대체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부여한 걸까요? 이런 부분은 명쾌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야 하겠지만, 이런 방식의 서술은 은연 중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전 방식이 옳았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할 텐데. 아니면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했어야죠.

무엇보다도, 민속학을 연구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단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오컬티즘이란 것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또 의존하려는 부분도 균형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요. 생명이 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일 테니까요. 현상에 대해 역사적으로, 그것도 엄청난 자료의 양을 무기 삼아 압박적으로 설명하면서, 정작 ‘왜’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부실합니다. 그저 ‘미디어의 영향’이라고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에요. 균형이 없어요.

글을 맺기 전에, 마지막 장에서 인터넷과 오컬티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말한 것들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디지털이라는 기술이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정보사회에 해를 끼칠 소지는 이처럼 다분하다. 몇몇의 악의에 의해 사태가 간단하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p. 417)

2006년 통계 중, '구글닷컴의 도메인에서 위키피디아는 전체 검색어 가운데 6위에 올랐다. 이 같은 선전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정보들의 익명성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신비화, 살짝 틀어 저작권 문제를 교묘히 피해 가며 올리는 바람에 왜곡되고 만 지식 등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을 진정한 지식사회라면 심각하게 문제삼아야 하지 않을까?' …(중략)… 익명의 아마추어들이 총체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지식을 생산한다는 발상은 모순으로 가득한 합리적 신비주의를 낳고 말았다. (p. 421)

그 어떤 존재든, 이면 내지 어두움은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딱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잖아요) 다만 어떠한 방식으로 조율해 나가느냐가 관건이겠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러한 능력조차 무시하는 (혹은 과소평가하는) 듯 하기까지 느껴집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제법 흥미롭기도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조금 허탈하기도 하군요.

덧1) 짧게 쓰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다는.

덧2) 이 책의 부제는 '영혼과 일상을 지배하는 비밀의 세계를 파헤치다'입니다. (풉)


덧3) 경어체로 쓰니, 정도 이상의 막말(!)은 삼가게 되는 장점이 있네요. 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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