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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5 00:21
거의 안 보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찾게 되는 작가들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 연말에 따져 보니 한 해 동안 소설을 제법 읽기는 했더랬다. 아마 올해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작가 영역을 좀 넓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작가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인 아사다 지로의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한다.

히로스에 료코가 끝장나게 이뻤던 영화 '철도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민식&장백지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던 '파이란'의 원작자 아사다 지로(浅田次郎)는 1951년 옛 사족(士族, 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추오 대학 스기나미 고등학교(中央大学杉並高等学校)를 졸업한 후, 동경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영향 아래 자위대에 입대했다.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폭력단 주변부에 머물기도 했고 경마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는 등 상당히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러던 중 여성복 매장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원고를 썼고, 1991년 '빼앗기고도 참을쏘냐!(とられてたまるか!)'로 데뷔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늦게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지하철을 타고(地下鉄に乗って)'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吉川英治文学新人賞)을, 그리고 '철도원(鉄道員)'으로 나오키상(直木賞)을 받았다. '쓴다는 행위는 최대의 도락'이라 이야기하며 14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70권 이상의 책을 썼다.

스토리텔링도 탁월하지만, 아사다 지로가 쓰는 문장에는 독특한 서정성이 있다. 시공간적 요소를 적절히 배분한달까? 글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잠시 멈추어서서 해당 장면을 상상해보게 하는 그런. 독자를 정신없이 빨려들게 하는 글보다는, 먼 듯 하나 가까운 거리에서 등장인물들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에게는 '平成の泣かせ屋'(덧3 참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눈물이 핑 돌 때가 많다. '철도원'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 특히 그러해서 문고판으로 산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몇 번이고 반복해 읽기도 했었다.

오늘 소개할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에는 총 7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소개에 소홀했던 지난 포스트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공을 들인 건, 살아온 이력을 주마간산 식으로나마 소개를 해야 좀 더 그의 글이 마음으로 읽히기 때문일 거다. 1951년 생임에도 불구하고, 패전하기 전의 일본을 묵묵히 받아들였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애잔하게 파고든다(인연의 붉은 끈, 원별리, 여우님 이야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 머무는 이들을 관통할 만한 무언가를 던져 준다(옛날 남자). 그리고, (아사다 지로 소설의 최대 강점이기도 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다소 스산한 풍경도 때로는 애처롭게, 때로는 정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손님, 뼈의 내력, 벌레잡이 화톳불).


시공간적 배경이 어떠하든, 그리고 이형의 존재들이 섞여 있든, 결국 언제나 중요한 것은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다. 쓸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를 따뜻하게 해 주는 글들 덕분에, 간만에 행복한 책읽기를 했다. 이 처연한 감성이, 못내 사랑스럽다.


덧1) 글 중 아사다 지로에 관한 신상 정보들은 일본 위키피디아를 참고했음을 일러둔다.

덧2) 참고로 아사다 지로라는 필명은 원래 그가 처음 신인상 예선을 통과한 소설 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최종적인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예선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기뻤던 나머지 그대로 아사다 지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들은 여러 자료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현지를 찾아가보지도 않고 쓴 것들도 제법 있는데, 그 중에 철도원도 포함되어 있다는 데에 놀랐다. 오히려 이쪽이 더 낭만적인 작품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상상력과 감성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 Orz.

덧3) '平成の泣かせ屋'에 대해 살짝 부연하고 넘어가자면. 우선 헤이세이(平成)는 1989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 연호로서 '현대' 내지 '오늘날'이라는 뉘앙스를 강조할 때 많이 쓰인다. ('헤이세이 세대'라고 하면 1989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어린) 층을 가리키기도 함) 그리고 '나카세야(泣かせ屋)'에서 '야(屋)'는 직업적 혹은 전문적으로 어떤 일에 능한 사람을 가리킬 때 붙이는 접미사이며, 나카세(泣かせ)는 '남을 울리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나카세루(泣かせる)'의 활용형으로, '나카세야'는 '남을 잘 울리는 사람' 내지 '울리는 데 능한 사람'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즉 '平成の泣かせ屋'는 헤이세이 시대(=오늘날)에 우리들을 잘 울게 만드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될 듯.

덧4) 아사다 지로를 보라. 나이 40에도 꿈은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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