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코노파워: 그들이 세상을 구했다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 제도권 교육 내 ‘공부’에서 좌절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걸 유일하게 깨뜨린 것이 대학 시절 수강한 경제학 수업이다. 한창 정치경제학 공부에 열 올리던 대학교 3학년 때 소위 말하는 ‘주류경제학’을 알아야겠다 싶어 용감하게 경제학원론1(미시경제학)을 들었으나.. 결과는 처참하게도 C-.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수업은 잘 안 들어갔지만) 중간/기말고사 볼 때도 답안지를 빼곡하게 채웠을 정도로 분발했었는데 저 학점이 나왔다. 그 때 받은 충격이란..-_-; 대학 성적표에서 유일하게 C였고(그것도 C-!!) 전체 학점을 엄청나게 깎아먹어서 재수강을 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재수강은 안 한다’주의였던 데다 다시 한다고 해서 더 잘 나올 것 같지도 않았고 하여 그냥 포기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 나는 이 학문이랑은 안 맞나 보다’하는 철없는 생각으로 말이지. (하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재수강은 안 할 것 같다. –ㅅ-) 어쨌든 이 서평은, 이 정도로 경제학에 젬병인 토양이가 쓰는 것임을 참고하셔야 할 듯.
얼마 전 위드블로그 베타테스터로 선정되어서 책 한 권을 받았다. ‘이코노파워’라는 책이고 ‘나와 세상을 구하는 경제학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재미있게 봤었던 ‘괴짜 경제학’과 비슷한 책이겠거니 해서 신청을 했는데, 글쎄, 개인적으로는 참 비추하고 싶은 책이다. 사실 중간 이후부터는 건성건성 읽어서 제대로 된 리뷰가 될 것 같지도 않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책은 세계를 요 따위로 말아먹고 있는 시카고 학파를 찬양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그들이 세계를 구했다고? 참으로 쌍욕 나오는 소리다. 다 필요 없고 래퍼 곡선을 만든 아서 래퍼가 추천의 글을 써주었다는 걸 알았다면 안 읽었을 거다. 시카고 학파라고 불리는 이들 모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서 대놓고 까기는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밀턴 프리드먼이 세계를 구할 수 없었다/없다는 정도는 안다. 대표저서 중 하나인 ‘자본주의와 자유’를 읽으면서 그의 사고에 소름 끼쳤던 게 아직도 생생하고.
무엇보다도 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필연적이라고 설정하는 논리, 자본주의(좀 더 정확하게는 신자유주의)만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에는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내가 mp3플레이어를 사려고 할 때 내게는 여러 제품들 중 하나를 고를 ‘자유’가 있다. 그리고 자유가 갖는 선택지의 범위는 해당 시장 내에서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욱 넓어진다. 즉 경쟁이 미덕이고 또 그러해야 마땅한 사회에서는 그만큼 개인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세계에 소환하는 장치라는 거다.
꽤 타당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다. 자유로 구현되는 인간의 가치가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뜻이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인간다운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인 거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끊임 없이 적으로 인식해야만 하는 세상을, 예찬하고 있는 거다.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 모두를 물적 존재로 치환할 수 있고, 따라서 더 큰 물질을 획득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세상. 인간의 내적인 가치는 무시되어도 좋은 혹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라 치부되는 그런 세상. 물질만이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세상. 과연 이러한 세상을 ‘구해졌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본다.
어쩌다 보니 책 자체와는 벗어나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 책도 위와 같은 사고방식을 전제로 깔고 있다. 공교육 문제나 의료 문제 해결책이랍시고 제시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정말이지 토기가 올라온다. 이들이 경제학의 중심에 둔 대상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닌 ‘지불 능력이 있는 인간’이니까. 노암 촘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는 ‘부자들의 사회주의’인 것이다. 의료는 물론이고 특히 교육 분야에 ‘효율’이라는 잣대를 똑같이 들이댈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여간 괴로운 책이 아니었다. 결국 이들의 논리는 인간도 차등화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질 뿐. 시장은 결코 완전무결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더 써봤자 잔뜩 욕만 해댈 것이 뻔하므로 그냥 여기서 접을까 한다. 어쨌든 지금의 전세계적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됐다거나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은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글을 맺기 전에 책의 구절 중 딱 두 군데만 인용해 보겠다.
“아시아에 대한 (폴) 크루그먼의 부정적인 평가는 후에 발생한 사건들을 통해 잘못된 예측이었음이 밝혀진다.” (마크 스쿠젠)
“자녀에게 가장 적합하고 좋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부모들을 소비자로 하는 경쟁적인 사립 교육 시장은, 그것이 어떻게 공교육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폴 크루그먼의 예측은 옳았고, 사립 교육 시장을 근거로 한 프리드먼의 주장은 한국을 보면 가당치도 않은 소리란 걸 알 수 있다. 하긴. 2008 핫 키워드 중 하나인 국제중을 혁명이라 보는 이들도 분명 있기야 있을 터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