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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08:56
도쿄 아키하바라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이질감은 시간이 꽤 많이 지난 요즘에도 제법 생생하게 살아 있다. 스타일을 위한 패션이 아닌, 오로지 편의를 기준으로 찾아 입은 듯한 옷차림과 운동화에 저마다 무천도사 등딱지 쯤 되어보이는 크기와 무게의 가방을 짊어지고서 무어가 그리 바쁜지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찾아 다니는 '존재'야 제각각이지만 목표물에 대한 의지와 집념을 계량화한다면 아마 게이지가 차고 넘치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흔히 '오타쿠'라 부른다.

오타쿠. 일본어로 옮기면 お宅(otaku). 정석대로의 뜻은 '댁'이다. 예문을 들어보자면 '그래, 댁은 어디에서 오셨소?'와 같은 문장이 적당할 것 같은데, 낯선 이에게 어느 정도의 상식적인 예의를 갖추는 2인칭 대명사,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왜 '댁'이 '마니아의 심화 버전' 내지 '뭔가에 미칠 듯이 집착하는 사람'으로 쓰이고 있는 것일까?

에티엔 바랄이 쓴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이라는 책에 따르면 코미케나 아이돌 가수의 공연장 등에 구름같이 몰려드는 버전업 마니아들(즉 오타쿠)들이 서로를 지칭하는 말로 '오타쿠'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견해는 에티엔 바랄의 견해가 아니며, 그 또한 일본의 한 사회학자 의견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서로 공유하고 있는 목표는 비슷하지만 정보 교류 차원 이상의 교감을 나누고 싶지 않은 그들이 대화에 사용하는 2인칭 대명사가 '오타쿠'였다는 것으로, 결국 이 단어는 오타쿠 집단을 어느 정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을 띤 어휘로 커졌다.

이 책, 그러니까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은 유명한 몇몇 오타쿠들을 인터뷰하거나 그들이 중심에 있었던 각종 사회 현상 등을 이야기하고, 왜 이러한 세대적 집단이 일본 사회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 태생은 무엇인가를 분석했다. 오타쿠는 이러이러하다, 와 같은 나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왜'와 '어떻게'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책이다. 사실 우리는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가 던져주는 거대하고도 피상적인 이미지 자체만을 소비하고 있지만, 전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일본 사회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타쿠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최근에 나온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의미에서 추천.

덧) 언제나 이런 책들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함은 역시 번역인데, 저자가 프랑스 사람이고 번역하신 분 또한 프랑스어 전공이다보니 원문의 맛이야 잘 살렸을지 모르겠으나 간혹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표현이 등장하곤 한다. 가장 단적인 예는 '코이즈미 쿄오코(小泉今日子, Koizumi Kyoko)'를 '고이즈미 기오코'라고 해놓았다는 것일 듯. 'k'나 'g'로 시작하는 두음을 모두 'g'로 옮기는 거나, 장음을 모두 탈락시켜 단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우리 규정이기도 하니 마음엔 안 들어도 일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교코'로 해야 할 것을 '기오코'라고 하는 건......더군다나 그녀의 애칭인 '쿙쿙'을 가리켜 '기온-기온'이라고 옮기는 이 센스를 도대체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지. 번역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명-지명을 제대로 옮기는 게 아닐까 하는데, 참, 할 말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