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23 09:21
[책과잡담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개인적인 도서관이자 책 창고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고양이 빌딩도 매우 유명하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에(층수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음) 오로지 책을 갖다 두고는 건물 외관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 놓아 고양이 빌딩으로 불리고 있다. 이 건물로도 모자라서 건물 인근에 다시 책 저장소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단다.
그런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이란 책을 최근에 읽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가 주로 대학생 무렵과 그 이전에 탐독했던 책들을 주로 소재로 했다면, 이 책은 그 이후에 읽어 온 책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혼자서 수백권의 책들을 소개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전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 돈 아까워-' 였다. 적어도 애초의 목적(괜찮은 책을 골라 보려는)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단순히 '이 책 읽어보니 좋더라, 너도 한 번 봐라'하는 식으로 좋은 책을 추천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만약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 책을 보려는 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 비추하는 바이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첫 번째 이유. 이 책에 망라된 책들의 분야와 권수가 너무 많다. 독서건, 공부건, 학문이건, 기본적으로는 일단 어느 한 지점에서 차근차근 출발해서 스스로의 앎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압도적이라는 느낌은 들어도 '나도 이렇게 읽어봐야지'하는 생각은 1g도 들지 않는다. 이 책은, 특히나 다방면의 독서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갈굼 용도로 적당하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두 번째 이유.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는 그간 읽어왔던 책 소개, 그리고 2부는 최근의 독서 일기다. 2부보다는 1부에서 좀 더 알찬 책들을 소개하고 있으나, 결정적으로 국내에 번역된 게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절판된 책들이 수두룩하다. 이거 뭐 어쩌라고...- -
물론 보고 나면 나름대로 '아, 이건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도 더러 있지만, 글쎄. 독서하기에 좋은 참고 서적을 추천받을 요량으로 읽어봤더니만 꼴좋게 시간낭비했다.
무엇보다 나는 국내에서 잠깐 불었던 다치바나 다카시 열풍을 이해하지 못하는 1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일본 내에서 존경받는 데에는 록히드 사건 같은 사회적인 이슈를 과감하고도 날카롭게 파헤치는 지적 감수성과 깊이가 한 몫 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이야기. (조야한 예를 하나만 들자면. 진중권이 정부에 대해 계속 쓴소리한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회자되는 것을 넘어 존경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물론 동량으로 비교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적어도 일본에서 왜 다치바나 다카시가 존경받는지를 먼저 이해한 다음에 소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하다못해 우리나라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나카 가구에이 연구'나 '일본공산당 연구'같은 대표적 명저는 번역되어 나와 있지도 않다. 이 책들을 논하지 않고서 다치바나 다카시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국내의 다치바나 다카시 열풍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다독가', '독서광'이라는 코드인데, 상당히 맹목적인 추종으로 비친다. 물론 책 많이 읽으면 좋다. 그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책을 끊임없이 그리고 엄청나게 많이 읽으며 살아가는 게 본인의 직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은 이상, 다치바나 식의 독서는 상당히 무의미하다. 그리고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씁쓸한 거다. 이 다치바나식 독서의 열풍이란 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생산했는지는 빠져 있는, 그저 신기루 같은 열풍과 동경.
요약하자면 이 책은, 직업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책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어느 한 사람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 라고 보는 게 더 맞다. 무언가 괜찮은 책을 추천 받고 싶은 생각이라면 굳이 안 읽어도 무방하다. 그에 관한 한 다른 좋은 책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까. 다만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읽어보시기를. 이 책의 초점은 '책'이 아닌 '다치바나 다카시' 그 자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