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집단 CLAMP. 중학교 때 나를 열광케 했던 몇몇 태그(!! 이젠 이런 표현도 쓴다) 중 하나였다. '성전', 'X', '카드캡터 사쿠라'(국내에서는 '카드캡터 체리'로 알려졌다) 등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작품들을 낸 히트제조집단. 그러나 작품 목록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완결된 작품이 그닥 없는, 다소 무책임한 집단이기도 하다. 일례를 들자면 'X'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건 '유리가면'이 끝나는 걸 기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되었을 정도다. 즉, 포기했다는 이야기.
내가 CLAMP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도쿄바빌론'이다. 이 만화를 중1때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일본 제일이라 할 수 있는 음양사 가문, 스메라기 가의 당주인 스메라기 스바루와 암살자 집단 사쿠라즈카모리 세이시로를 양축으로 그린 만화다. 현대 도쿄의 여러 어두운 면들을 음양사의 시각과 행위로 해석한, 독특한 만화라고 할 수 있다. CLAMP의 작품 중 드물게 완결되었으며 총 7권이다.
워낙에 음양도와 음양사를 테마로 다루는 것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만화에 빠졌던 건 작품이 표방하고 있는 세계관ㅡ도쿄에서 일어나는 여러 범죄들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선과 악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ㅡ 때문이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난 배경에 깔린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와 인간 내면의 추악함, 이중성, 그리고 모호함.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한계와 단죄하고 판단할 권리의 유무 등, 철저히 타자일 수도, 그렇다고 당사자일 수도 없는 상태로 부유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어린 주인공(10대 후반) 스메라기 스바루는 자신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도쿄바빌론' 4권을 보면 아이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직업이 음양사인 만큼 영적인 기운을 감지하는 데에 탁월한 스메라기가 어느 곳을 지나다가 강한 원기를 느껴 가보니, 초췌할대로 초췌한 한 어머니가 '견신'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견신이란, 개를 죽인 후 죽은 개의 혼령을 자신의 식신으로 부림을 말한다) 일단 저지한 후 그 어머니의 사연을 듣게 되는 스메라기.
너무나도 행복하고 단란했던 한 아이의 엄마였던 2년 전. 유치원에 간다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집을 나선 아이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적어도 살아 있는 상태로는.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아이는 강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머지 않아 범인도 잡혔다. 아이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데려갔는데 말을 듣지 않고 울길래 강에 처박았더니 조용해졌더라는 남자는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결국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자신이 남자를 처벌하기로 한 것이다. 국가가 대신 해주지 못한다면, 자신의 손으로 하겠노라고. 그리고 자신도 그 남자처럼 법을 피해갈 수 있는 영역을 통해 죽이고 말겠노라고. 그녀가 택한 것은 '저주'였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아이가 죽고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어.
범행을 저지른 '죄'도,
그것을 재판하는 '법률'도,
그에 상응하는 '벌'도...
모두 '타인'이 결정한다는 것을.
소문을 내는 '타인'.
취재하러 온 '타인'.
범인을 변호하는 '타인'.
녀석을 정신 감정한 '타인'.
무죄를 언도한...'타인'.
'타인'은
'피해자'가 받은
진짜 '상처'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
아이가 생전에 귀여워하던 개를 죽여 견신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녀. 하지만 모름지기 술법을 사용한 저주는 반드시 본인에게 영향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프로들은 이를 막기 위한 나름의 방편들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추어인 그녀가 견신을 사용한다면 고스란히 되돌려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에 '죽을 수도 있다'며 말려보려고 하지만 텅 빈 눈동자로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말했다.
나의 소중한 '아이'였어. 내 '행복'이었어.
31년 동안에 걸쳐서 열심히 쌓아올린 내 '행복'...
그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스쳐지나가는 '타인'이
순식간에 앗아가버린 거야.
요즘 세간을 뒤흔들고 있는 여아 살해사건을 보면서 떠오른 만화이기도 하다. 어째서, 인간은 타인의 삶을 이리도 쉽게 파괴하고 무너뜨리는가. 어째서 이렇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걸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연약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건, 그리고 인간이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존중이 절대명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자의 생명과 생존을 위협하는 건 결국 자기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고,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엘리아데 말마따나 인간은 신석기 시대 이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일까. 요즘은 무엇 하나 희망어린 소식이 들려오질 않는다. 날씨는 화창하고 어느 새 쾌청한 봄날이 찾아왔는데, 마음은 겨울보다도 써늘하고 시리다.
(fcGY4EVMIgu6f1WXQqgy4j69xB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