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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1 15:45

멋모르던 대학 새내기 시절 이야기 잠깐. 동기들보다 빨리 합격 통지를 받아 상당히 일찍 1학년 생활을 시작한 나는, 한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한 송이 꽃'이었더랬다. 내가 유일한 새내기였던 한 달 여 동안에만 해당되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나는 상당히 귀여움을 받았고, 덕분에 편하게 대학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전공 수업에 대한 기본 정보는 물론이고 다양한 캠퍼스 라이프 팁들을 미리미리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대학 생활이 쉬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황금 같던 시간들도 잠시일 뿐이었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뒤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슬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다. 나름 소신지원으로 택한 학과였지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공부였을까에 관한 물음을 비롯해 내가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가 과연 이런 것이었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등등 갑자기 여러 고민거리가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사실 그 때에는 굉장히 별 것 아닌 걱정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덮어버리려고 했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즉, 남들도 다 겪는 그저그런 '성장통'에 불과한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라고 치부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앓았고 그만큼 많이 잃었다.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무언가 적극적으로 해결책 등을 찾아내고자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까닭에, 나만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고 한동안은 적당히 휩쓸려 다닌 것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겨진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겪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던 기회들을 날려버린 듯한, 그래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그 때의 나.

이렇게 시시콜콜한 지난 얘기들을 끄집어내는 건 왠지 지금 상황과 어딘가 맞닿아 있다고 보여서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지 어느 새 달수로 다섯달 째, 올린 글들도 이번 글로 딱 100개 째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즐겁고, 새로운 거리 혹은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내는 작업 또한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블로그는 내가 원하던 그런 블로그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보면 나는 '글쎄'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애초에 그렸던 상이 그 자체로 언제까지고 굳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점차 변화하고 또 달라지기 마련이겠으나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블로그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며 또 블로그를 통해 무엇을 새로이 발견하고 덧붙이려 했을까? 25살 이후로 지향하고 있는 '내가 중심인 세계의 구축'이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음..일단 나는 좀 맞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블로그 역시 또 다른 나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다만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남들도 모두 나 같은 고민을 하는지 알 수는 없다는 점.

'이건 아니야..'하는 생각을 조금씩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한 박자 쉬고, 다시 채울 때다. 그렇지 않으면 내 블로그는 다시 20대 초반의 나처럼 모호한 정체성에 휘둘리다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이, 반성하고 고민할 타이밍이다.

덧) '오습복반'이라는 책 제목이 왜 이럴 때 떠오르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