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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12:47
요새 심장 쪽이 안 좋다. 술 마신 다음날 새벽에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가슴께가 아파서 깨는 건 일상이 됐고, 조금만 화가 나면 바로 조여오고 쥐어짜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아무 일 없는 상황에서도 갑자기, 안 좋아지고 해서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는 24시간 심전도를 권유하더라만, 당분간은 이대로 살아도 무리 없을 것 같다. 이따금씩 불편할 뿐, 별일 생길 성 싶지도 않고. 그랬는데.

강아지가 죽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전에 알았다. 다음달 28일이면 태어난 지 꼭 15년째가 되었을 우리 짱이. 최근 2~3년 동안 부쩍 늙고 기운 없어 해서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현실은 그 따위 준비로 괜찮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엄마가 급히 동물병원에 데려갔으나,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죽어 있었다고 한다. 짱이 이불이랑 사료 그릇이랑 장난감들은 어쩌나. 그거 어떻게 치우지. 치울 수 있을까. 15년 동안 밥 주고 목욕시켜주고 잘 때도 꼭 짱이를 품고 잤던 아빠는, 이제 어쩌나. 어떡하지.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하염없이 우신다.

앞으로 살 날도 많지 않다고 생각했고, 죽는다 한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너무 아프다. 술 마신 다음날 새벽에 욱신거리는 건 비교할 거리도 못 된다. 이젠 집에 가도 없겠구나.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흥분하던 우리 짱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던 나 때문에 아빠가 데려온 우리 짱이. 강아지답지 않게 도도해서 얄미울 때도 있었지만 짱이가 마루에서 자기 이불 뒤집어쓰고 곤히 자고 있는 모습만큼 우리 가족에게 편안한 풍경이 또 있었을까.

죽은 다음에야 이렇게 미치도록 보고 싶은 걸 보니, 나도 참 몹쓸 주인이었구나.


2010/08/02 14:12
영원의 아이 - 상 - 6점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아동 학대'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좀 더 일찍, 이를 사회 문제로 인식했던 것 같다. 적어도 '영원의 아이'를 보면 그렇다. 이 책이 1999년에 나왔다고 하니. 그리고 그해의 '일본 추리작가협회 상 장편상'에 선정되었다고 하니.


후아. 그런데 난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이 과연 ‘미스테리'로 분류될 만한 책인지. 일단 픽션이기는 하나 1,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사회 고발 르포, 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텐도 아라타뿐만이 아닌, 대체로 '사회파 추리 소설' 작가라 할 수 있는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읽고 나면 인물 및 해당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개성이 남는 게 아니라, '소재'만 남는다. 그 작가의 특징이라 할 것이 딱히 없다. 어느 시점부터 해당 영역의 일본 소설을 읽지 않게 된 결정적 이유. 뭐 그렇게 따지면, 비단 일본 사회파 소설들만 그러하겠는가만은.

그리고, 시쳇말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것이, 등장인물 몇몇의 입을 빌려 왜 인간과 삶에 대한 훈계를 노골적으로 하는 거지? 대사가 짧지도 않아서 더 깼다. 이것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읽지 않는 건데. 

어린 시절 각기 다른 형태의 학대로 고통 받은 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딱 거기까지랄까.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 때문에 주요 인물들 외의 심리는 다소 피상적이고, 사건 흐름에 질질 끌려가는 느낌도 다분히 있다. 읽고 나서 꼬박 이틀 정도, 괜히 우울해져서 고생하긴 했으나 솔직히 말해 재미는 없었다. '아동 학대'라는 중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을 테지만, 그 이상은… 모르겠음. 뭐, 난 아이가 없어서 그럴지도. (먼산)

아, 써놓고 보니 까대기만 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일본 사회파 추리 소설을 격하게 아끼기 때문에 그렇다는 변명을 남기고 싶…


덧1) 묘한, 일본어 번역투의 문장도 거슬린다. 등장인물이 원래 그런 말투를 쓴다기보다는, '원문'을 의식하게 만드는 불편한 문장들. (이건 나도 심히 반성해야 할 지점이기는 하지만…)
덧2) 1Q84 3권 나왔다고 떠들썩한 것 보면 '뭔가' 이상한 게 틀림없음. 하지만 이 이상 이야기하면 필화를 입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여기서 닥치자. (...)


2010/07/27 00:45
존경해 마지않는 내 스승님은, 나를 가리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때그때의 감정/마음과는 별개의, ‘진짜' 관심, 이 부재하다는 것. 지독히 냉정하다는 말도 함께. 전후 맥락 및 다른 이야기들은 (사실 그게 더 중요하지만 노출시키기엔 너무 크리티컬해서) 생략한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 남 말은 잘 담아두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털어내질 못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부정할 수 없어서다.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좌절스럽다. 그런데다 ‘척'도 못하지 않나, 나는. 과연 제대로,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비슷한 이야기인데, 현재 직종에서 나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 대해 고민 중이다. 어떻게든 이 업계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데, 당장 1~2년이야 지금 같은 식으로 어렵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글쎄. 그 이후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는' 수준이 아니라, 좀 암담하다. 내가 많이 모자르고 부족하니까. 좀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거늘, 하루하루를 덧없이 흘려보내고만 있다. 내 이런 고민을 들은 H 선생은 ‘이제 겨우 시장 가서 옷감 끊어올까 말까 하는 수준인 것을, 벌써부터 옷 한 벌 근사하게 지어내려고 한다'며 호통 아닌 호통을 쳤음. 물론, 지당한 말씀이지만- 무슨 옷을 지을지 정도는 그려낼 수 있어야 하잖아요. 흑.

그나마 요즘의 나를 즐겁게 해주는 건 라틴어 공부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를 일이다. 약간 오버해서 말하자면 근래 한 공부 중 제일 재미있다. (법의학보다 재미있으니 말 다 한 거다;) 어차피 혼자 공부하는 것이라 진도 등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괜히 마음이 급해서 매일매일 들여다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양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음.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해둘 걸. 환경도 비교적 좋았었는데 말이야. 뭐, 이제부터 하면 되니까. 하고 싶은 것, 공부하고 싶은 것들은 이렇게 늘어나기만 하고. 딱 며칠만이라도 느긋하게 읽고 싶은 책들만 읽고, 공부하고 싶은 것들만 집중해서 해봤음 좋겠다. 이런 공부들만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덧1) 얼마 전 K가 ‘넌 프랑스에 가서 공부하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무게감 없는 조언을. 그런데 그 말에 혹한 나는 대체 뭐임.

덧2) 나의 미노년,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목소리로 <신학 대전> 라틴어 원전을 읽어주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평생 존경하며 충성할 수 있다. -_-; (앨런 릭맨 목소리도 환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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