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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3 17:45
바람이 분다, 가라 - 10점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볕 좋은 토요일, 손에서 놓지 못했던 한강의 신작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재미있게(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만) 읽었어서 이번 새 소설에 기대가 컸었다. 뭐, 소설에 대한 평이야 평론가들의 몫이니 별다른 말은 안 할란다. (하지만 가끔, 소설에 다가가기 힘들게 만드는 게 평론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벽을 쌓아올리는 느낌. 유명인사 경호원 같은 느낌. 언어로 언어를 가리는 느낌.)


결코 서두르지 않는 그녀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장면들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마치 나도 그 시간들을 함께 보냈던 것처럼. 한강은, 어쩜 이렇게 문장을 투명하게 쓸 수 있는 걸까. 종이 위의 글자 너머까지 뽀얗게, 아릿하게 비쳐오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격렬하다. 정희가 이따금씩 느끼는 흉통이 책을 타고서 고스란히 내게 옮겨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줄거리로 재미있을 소설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가장 최근에,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갈" 만큼 강렬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을 헤집어봤다. 글쎄... 최근은커녕 과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나 했는지. 어쩌면 나는, 의지가 딱히 없다는 걸 핑계 삼아 이렇게 하루하루를 덧없이 흘려보내고만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엇일까. 사람을 뜨겁게 살게 하는 것은.


덧) 봄녀 님도 이 책 읽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하지만 님(?)은 미쿡에. 흑.


2010/03/10 15:55
1. 조금 전에 올렸던 포스트(라고 쓰기에도 민망한)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블로고스피어가 조금씩 쇠락하고 있는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무언가 있어 보이는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트윗이나 미투 같은 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 자주 쓰든, 가끔 쓰든, 블로깅을 한다는 건 어쨌든 부담스러운 일이다.

2. 프로젝트를 간신히 마무리지었다. 아직 몇 가지 보완 작업들이 남아 있기는 해도 끝난 것은 끝난 것. 세상이 바뀌고, 또 대단히 홀가분해질 줄 알았더니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캐우울한 감정노동자로 전락했음. 타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성격도 못 되는데, 대상을 바꾸어가며 하루에도 십수 번씩 감정을 작위적으로 표현하려니 일이 점점 고되질 수밖에. (여기만 그런 것이라기보단, 어느 회사든 다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만.) 허나, 내 업무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 내지 상사가 없다는 건 좀 치명적인 문제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혼자서 이 일들을 해나가는 게 과연 가능할는지. (자신없음.) 적어도, 업무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직속 상사가 있음 얼마나 좋을까. (와아, 써놓고 보니 '로또 맞게 해주세요'라고 적은 것 같은 느낌.)

3. 그렇기는 해도 야근이 주1회 정도로 줄어서 이제는 제법 시간이 난다. 하여, 슬슬 사람답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책 몇 권을 뒤적거렸으나 『자학의 시』 말고는 모두 실패. -_-; 『정신의학의 역사』는 꽤 재미없다. 서술이 산만하기도 하고. 수업 서평감으로는 딱이겠더라만. 그리고 『동아시아 근대 이행의 세 갈래』는... 내용을 떠나서, 정말 안 읽힌다. 이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창비의 일본어 표기는 대체 왜 그런 거지? (일본어뿐만이 아니기는 하나...) 토오꾜오, 쿄오또 등등의 표기법이 심히 거슬려서 읽을 수가 없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도 뭐 썩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창비의 저것에 비한다면...(한숨) 표기법 기준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함. 다른 곳도 아니고 창비인 만큼 나름의 기준이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만, 그럴 거면 '도꾸가와' 같은 것도 '토꾸가와'라고 했어야지. 또 만약 원어에 가까운 발음 때문인 것이라면 된소리보다 거센소리가, 차라리, 일본어 발음에 가깝단 말이야. 그러면 '오렌지'는 '어린쥐'라 쓰나? 이거야 원.  

4. 『자학의 시』, 묘하게 찝찝한 만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연재되었던 만화이고, 아베 히로시와 나카타니 미키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단다. 백수이면서 걸핏하면 밥상을 뒤집어엎고, 날마다 술을 마시며 파친코와 마작, 경마 등에 정신이 팔려 있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아내(가끔은 교묘히 다루기도 하지만), 유키에의 이야기다. 이 만화에 대해 딱히 할 말도 없는 것이, 뭐랄까, 만화가 아닌 진짜 '타인의 삶'에 쓸데없는 헛소리를 보태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감정의 질과 내용 모두 다르지만 영화 <타인의 삶>을 보고 난 후의 기분과 좀 닮은 것도 같다. 그 정도의 몰입이 가능한 만화. (전2권)

자학의 시 1 - 10점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세미콜론

5. 역시. 나의 갈 길은 일본 오덕.


(추가 잡소리)

-학회 때문에 프랑스 간 곰돌, 선물 안 사오기만 해봐라. ** 남고로 되돌려보내줄 테다.

-블로그 방치 두 달째, 한RSS 구독자가 50명 가까이 줄었다. (그러면서 피드버너 수치는 거의 그대로인 게 신기함.) 구독자 님들, 면목없습니다. Orz.
2010/03/10 14:02
..라기보단 네 컷 만화이지만.
아침에 RSS 확인하다, 새로 올라온 김국현 님의 포스트를 보고서 '와락'하고픈 심정이었.
http://goodhyun.com/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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